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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속으로] 시인 신경림, 평론가 유종호

바람아님 2015. 3. 28. 10:52

[중앙일보] 입력 2015.03.28 

신경림 "머리에 딱 들어와야 좋은 시"
유종호 "요즘 시, 산문 닮아 문제"


시인 신경림씨(왼쪽)와 평론가 유종호씨. 충주고 1년 선후배지만 동갑인 두 사람은 “문학은 삶에 뿌리를 내리되 읽어서 즐거워야 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인 신경림과 평론가 유종호씨.

 한국 문단의 어른인 두 사람은 다른 듯 비슷한 삶을 살아 왔다. 우선 나이가 같다. 1935년생, 올해로 팔순이다. 또 충주고 1년 선후배 사이다(유씨가 선배). 고향 친구다.

 문학에서는 엇갈린다. 신씨가 ‘참여파’라면 유씨는 ‘순수파’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로 시작하는 시(詩) ‘파장’으로 유명한 신씨는 시대와 밀착해 왔다. 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에 동행했다.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두 차례 지냈다.

 유씨는 전형적인 문학 엘리트다. 서울대 영문과 졸업 후 미국 뉴욕대에서 석사를 했다. 깊이 있는 평론으로 당대 지식인 사회에 반향을 불렀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이화여대·연세대 등을 거쳐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맡고 있다.

 판이한 것 같은 두 사람의 문학에는 공통점도 있다. 시·소설을 읽는 문학체험이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문학은 삶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점에서도 의견이 일치한다. 둘은 문학 자체를 중시하는 ‘문학주의자’다.

 두 사람이 최근 나란히 책을 냈다. 신씨의 책은 일본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郞·84)와 주고받은 시와 직접 나눈 대담을 묶은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예담)이다. 유씨는 2011년 강연 원고를 정리한 『문학은 끝나는가?』(세창출판사)를 냈다. 문학 위기론이 낯설지 않은 요즘, 두 사람의 60년 우정과 문학의 앞날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 신 선생은 어떻게 일본 시인과 책을 함께 냈나(그러자 유씨가 끼어들었다).

 유종호(이하 유)=“내가 설명할 수 있다(웃음). 신형의 일본어 시선집 『낙타를 타고』가 2012년 일본에서 나왔는데 번역을 한 일본 여성이 주선해 두 사람이 만났다. 다니카와가 먼저 시를 주고받는 대시(對詩)집을 내자고 제안했다.”

 둘은 단순한 고교 동창이 아니다. 유씨의 부친 유촌 선생은 충주고 국어 교사였다. 시를 썼던 유촌은 시 잘 쓰기로 소문난 신씨의 든든한 문학 후원자였다. 그런 인연으로 신씨는 나중에 유촌 선생의 시집 발문(작품의 가치를 논한 글)을 쓰기도 했다.

 - 두 분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나.

 유=“고등학교 때는 말로만 들어 알았다. 직접 만난 것은 대학 입학 후 서울 종로 거리에서다. 길 가는데 누가 인사하더라.”

 - 어떻게 종로에서 만나나.

 유=“당시 서울은 지금보다 좁았다. 종로에서 아는 사람과 마주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종로는 걷기에 좋았다. 길이 널찍하고 자동차가 적어 스모그가 없었다. 신형과 나는 시를 많이 외운다는 점이 비슷했고 시 보는 안목도 맞아떨어졌다. 대번에 친해져 1년 가까이 하숙을 같이했다. 정치적 입장은 갈렸지만 문학적으로 통해 친하게 지냈다.”

 신경림(이하 신)=“시는 시고, 정치적 견해는 정치적 견해다. 유 선배와 나는 좋은 시를 보는 시각이 비슷했다.”

 - 어떤 시가 좋은 시인가.

 신=“나는 읽어서 머리에 딱 들어오는 시가 좋다. 열 번쯤 읽어야 이해되는 시는 나중에 보면 좋은 시가 아닌 경우가 많다. 좋은 시는 잘 외워진다. 구체적인 장면이 떠오른다.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서정주의 ‘자화상’이 그런 시다.”

 유=“좋은 시는 제가끔 좋다. 좋은 이유가 다 다르다. 그래서 좋은 시는 이런 거다, 얘기하기 어렵다. 나쁜 시에는 공통점이 있다. 남 흉내를 내거나 말이 상투적이고, 개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백석의 시, 박목월과 박두진의 초기 시가 특히 좋다. 서정주는 좋은 시가 너무 많다. 음악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곡 고르라면 어려워한다. 마찬가지다. 좋은 시 꼽기는 쉽지 않다.”

 - 요즘은 좋은 시가 안 써지나.

 유=“취향의 문제다. 요즘 시는 좋지 않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요즘 시가 자꾸 산문을 닮는 것은 문제다. 시는 산문의 반대 지점에서 힘이 생기는 장르다.”

 신=“젊은 시인들이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자꾸 쓰려는 경향이 있다. 시가 어렵다고 푸념하는 사람이 많다.”

 두 사람은 그러면서도 요즘 개성적인 후배 시인이 많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다. 유씨가 “요즘은 문학 아닌 다른 분야 책을 즐겨 읽는다”고 해서 화제가 바뀌었다.

 - 어떤 책을 읽나.

 유=“플라톤의 『국가』 『고르기아스』를 읽는데 아주 재미있다. 아마존 킨들(전자책 단말기)을 이용한다. 플라톤 같은 고전은 5달러면 내려받는다. 킨들은 활자를 키울 수 있어 나처럼 눈 나쁜 사람에게 편리하다.”

 - 어떤 점이 좋나.

 유=“플라톤은 정치에서 정의를 강조했다. 대중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을 가장 싫어했다. 정의에서 멀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지혜를 갖춘 철학자가 왕이 돼야 한다고 했다.”

 - 그게 가능한가.

 유=“플라톤의 이상론을 따르자는 게 아니다. 정의에 해당하는 희랍어 ‘디카이오시네’는 공정함을 뜻한다. 그걸 추구하는 게 국가는 물론 삶의 목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세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공정함과는 너무 먼 방향으로 현실 정치가 움직인다.”

 - 과거 신 선생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신=“작가회의가 반드시 반민주와 싸웠던 것은 아니다. 자유롭게 문학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첫째였다. 검열이 엄격하던 시절, 그걸 통과하기 위해 비유나 상징을 쓰다 보니 시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였다. 민주화 이후 검열이 없어지니 시집이 오히려 안 팔린다. 아직도 마음대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후배들이 있는데, 내가 그런다. 70년대를 겪어보지 않아서 그런다고.”

 - 요즘 가장 어려운 건 뭔가.

 신=“글을 써도 돈이 안 되는 것이겠지. 자본주의가 발달될수록 돈이 되지 않는 문학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래도 보람이 있었다. 요즘은 사람들이 안 읽어 보람을 느끼기도 어렵다.”

 - 문학은 위기인가.

 유=“역사를 통틀어 작가가 창작의 자유를 누리며 많은 독자를 거느린 적은 없었다. 어찌 보면 문학이나 예술은 항상 사회 주류에서 비켜나 어려운 삶을 이어 왔다. 인터넷의 발달로 책 읽기 좋은 ‘독방’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종래 우리가 알던 문학이 위기를 맞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은 언어의 동물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한 문학은 건재할 것이다. 더구나 언어 예술은 다른 장르에 비해 가장 성찰적이다. 아무리 위기라 해도 문학이 없어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시의 기능은 뭔가. 왜 필요한가.

 신=“재미있으면서 얻는 것도 있는 게 시다. 시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교화나 교육, 정권 교체나 혁명의 도구가 아니다. 목적을 따지는 순간 시의 생명은 사라진다.”

 유=“시는 한 나라 말을 끊임없이 변화시켜 창조적으로 만든다. 가령 ‘높푸른’이라는 형용사는 정지용이 처음 쓰기 시작했다. 시가 말의 기동성을 강화한 사례다. 언어는 인간 본질에 속한다. 이 때문에 언어를 자극하는 예술은 인간 존재의 신경을 건드린다.”

 - 신 선생은 지난해 가을 JTBC 드라마 ‘유나의 거리’가 이 시대 진정한 문학이라고 했는데.

 신=“우리 사는 모습을 너무 생생히 드러내 그런 말을 했다. 삶의 모습을 등한히 하면 문학이 아니다.”

 - 유 선생은 신 선생의 시집 『농무』가 이전 한국시를 추문(醜聞)화한다고 평한 적이 있다.

 유=“보통 사람들의 삶을 시에 끌어들여 이전 시인들이 쓰지 못한 좋은 시를 썼다는 의미였다.”

 - 유 선생이 가끔 발표하는 시는 어떻게 보나.

 신=“훌륭하다. 서정시로….”

 유씨는 “신씨가 욕심이 없어 아직 동안(童顔)”이라고 했다. 그러는 유씨 역시 피부가 탄력 있어 보였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 BOX] 엘리트주의로 문학 위기론 확산, 대중주의로 하향 평준화

문학은 과연 위기인가. 사실이라면 얼마나 심각한가. 유종호씨는 『문학은 끝나는가?』에서 ‘문학의 위기’ 혹은 ‘문학의 죽음’은 과장법이라고 진단한다. 소수이긴 하지만 열정적인 독자가 있는 한 문학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그는 문학이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받으면서 문학 위기론이 확산됐다고 지적한다. 선택받은 소수만 문학을 할 수 있다는 엘리트주의는 민주주의에 반한다고 공격받았다. 문학 엘리트주의자는 파시스트주의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이런 풍조는 서유럽에서 1960년대 후반에 나타났다.

 엘리트주의가 자리를 내준 빈 공간에 들어선 건 예술 대중주의다. 더 이상 문학이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예술장르가 되면서 문학이 하향 평준화됐다는 생각이 유씨의 글에는 깔려 있다.

 유씨는 엘리트 사이의 경쟁이 없는 분야는 없다고 지적한다. 스포츠나 대중문화에서도 엘리트가 각광받기 마련이다. 문학이 유독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난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유씨는 겉으로 나타난 현상 아래 잠복한 심층 동기를 파헤치는, 사회과학 이론들의 폭로 성향도 문학이 쪼그라드는 데 가세했다고 주장한다. 가령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인간 행동의 표면적 동기는 진정한 동기를 은폐 혹은 왜곡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런 정신의 ‘탈신비화’가 문학의 하락 혹은 위축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