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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아버지 "宣祖가 도망간 건 잘못", 비주류 아들 "잡히면 나라 망하는데…"

바람아님 2015. 3. 28. 10:55

조선일보 : 2015.03.26 

[父子 역사학자 이성무·이희진]

'징비록의 그림자' 펴낸 이희진… 아버지와 史實·학문 태도 논쟁
父 "大家 되려면 사람 존중해야", 子 "덕담하다간 집단 이기주의"

아버지와 아들의 역사 논쟁은 뜨거웠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아버지 이성무(78) 한국역사문화연구원 원장은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은 사람을 존중해야지 잘못만 뒤져서는 안 된다"고 했고, 아들 역사학자 이희진(52)씨는 "덕담하자고 역사 공부하는 게 아니지 않으냐"고 맞섰다. 이씨는 임진왜란 당시 전략을 잘못한 대표적 패장(敗將)으로 류성룡이 '징비록'에서 지목한 신립 장군을 옹호하며 팩션 형식으로 쓴 '징비록의 그림자'(동아시아)를 최근 냈다.

25일 만난 부자(父子) 역사학자는 사실(史實) 해석부터 학문하는 태도까지 서로 비판하며 날카롭게 대립했다. 아버지 이성무 원장은 국사학계 수장인 국편위원장을 지낸 '핵심 주류학자'. 이 원장의 2남 1녀 중 장남인 이희진씨는 서강대에서 고대사(가야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역사학계의 비주류 반항아'로 자처한다.


	아버지 이성무(왼쪽) 한국역사문화연구원 원장은 “대가(大家)가 되려면 작은 잘못만 뒤져서는 안 되고 푹 익어서 사람이 되는 것을 중시해야 한다”고 했다. 아들 이희진 박사는 “서로 덕담하면서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아버지 이성무(왼쪽) 한국역사문화연구원 원장은 “대가(大家)가 되려면 작은 잘못만 뒤져서는 안 되고 푹 익어서 사람이 되는 것을 중시해야 한다”고 했다. 아들 이희진 박사는 “서로 덕담하면서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고운호 객원기자

아들은 "류성룡이 '징비록'에서 패전 책임을 실무자인 신립에게 전가하려는 의도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류성룡은 신립이 조령(鳥嶺)이라는 험한 곳에서 적을 막지 않아 패전했다고 썼습니다. 하지만 조령은 서울로 가는 유일한 길이 아니었어요. 조령에 진을 치면 왜군은 전투를 치르지 않고 다른 길로 서울로 올라갈 수 있었기 때문에 적의 동향을 지켜보면서 길목인 달천평야에 방어선을 친 것이죠." 이에 대해 아버지는 "류성룡은 7년 동안 전쟁 총책임자로 실제 경험한 사람이다. '징비록'에는 당시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반성하는 대목도 많다. 신립 군대는 정예군인데 왜군이 이를 피해가려고 했겠나. 작은 것을 들어 일방적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임진왜란 당시 임금 선조에 대한 평가도 크게 달랐다. 아버지는 "선조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 전쟁이 나면 왕은 죽을 각오를 해야지, 도망을 간 것은 신하와 백성들에게 할 일이 아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도망갈 때 따라간 호종공신만 잔뜩 책봉하고 정작 전쟁을 치른 선무공신은 몇 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아들은 "왕이 잡히면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망하는 데 도망을 안 갈 수 있나. 선조가 서울에서 잡혔으면 더 불행한 사태가 왔다. 도망도 하나의 전략"이라고 응수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선조는 왕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왜란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고했던 김성일에게 책임을 지라고 했다. 왕권 국가에서 최종 책임은 결국 왕에게 있다. 김성일은 '전쟁이 일어난다고 보고했을 때 불러올 혼란을 걱정했다'고 훗날 말했다. 그는 칼칼한 선비로 처신을 했다"고 말했다. 아들은 "그것도 냉정하게 봐야 한다. 김성일은 헛정보로 국가의 대전략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혼란이 걱정된다면 최고책임자인 왕에게는 제대로 보고한 후 대책을 세워야 했다"고 비판했다.

아들은 류성룡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전쟁이 터지자 조선 정부는 4000명 병사를 모아 먼저 남쪽으로 내려보냈다. 이씨는 "류성룡이 이 병사들이 오합지졸이라는 것을 알았고, 자신이 체찰사가 되어 이끌고 내려가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면서 "신립이 '경험 있는 장수가 지휘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신립이 공(功)을 탐했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정작 자신은 빠졌는데 이는 전형적인 정략적 제스처"라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흠을 들춰내 평가하면 위인이 생길 수가 없다. 류성룡은 이순신·권율 등을 발탁해 전쟁을 치렀는데 이를 보면 사람 보는 안목이 있었던 것"이라면서 "관점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런지 안 그런지 알 수 없는 것을 가지고 먼지 털기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아들은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써야죠. 그런 말은 역사가가 할 말은 아니죠"라며 반박했다.

그래도 끝은 덕담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머리는 좋다"고 했다. 아들은 "아버지는 공사(公私) 구분이 철저한 분이어서 아들이 대학에 자리를 잡는 데 한 번도 도와주신 적이 없다"고 했다. 뼈있는 덕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