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사설]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식, 분열 아닌 통합의 장 돼야

바람아님 2015. 5. 25. 07:12

중앙일보 2015-5-25

 

지난 23일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에서 볼썽 사나운 모습들이 이어졌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일부 참석자로부터 물세례와 욕설·야유를 당했고 김한길·천정배 의원 등 새정치민주연합과 야권의 비노 계열 정치인들도 욕설세례와 함께 물벼락을 당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인 건호씨는 인사말에서 김무성 대표를 겨냥해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종북몰이에 열을 올리더니 반성도 없이 불쑥 나타났다”며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며칠 전 광주 5·18 전야제에 참석한 김 대표가 물병과 야유 세례 속에 쫓기듯 행사장을 떠난 데 이어 노 전 대통령 추모식에서도 여야 정치인들의 봉변이 이어진 것이다. 세상을 떠난 분들의 뜻을 기리며 치유와 통합의 정신을 되새겨야 할 추도 행사가 오히려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는 굿판이 돼버린 데 우울함과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일부 참석자의 돌출적인 행동이긴 하지만 여당 대표로는 노 전 대통령 추모식에 처음 참석한 김무성 대표의 의미 있는 시도를 폭력적 언행으로 방해한 건 통합과 단결을 역설한 ‘노무현 정신’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건호씨의 발언 역시 어려운 발걸음을 한 조문객에게 상주로서 할 언행이었는지 의문이다. 행사 주최 측인 야당 지도부의 소극적 대응도 아쉬웠다. 문재인 대표는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지 못해 안타깝다”는 말만 했을 뿐 막말을 하는 참석자들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 문 대표가 그들에게 자제를 요청하고, 여당과 비노 진영 참석자들을 보듬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자리는 훨씬 빛났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추모식은 여당이나 비노 세력에 대한 정치적 불만을 비합리적 방식으로 표출하는 무대가 아니라 ‘노무현 정신’을 국민 모두의 자산으로 승화시키는 장이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노 전 대통령의 기일을 맞아 그 지지자들로선 맺혔던 한을 억누르기 힘들었을 수 있다. 하지만 6년째에 접어든 노 전 대통령의 기일은 특정 정파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노무현 정신을 기리며 민주주의의 발전을 다짐하는 날이 돼야 한다. 문 대표를 비롯한 친노들이 요즘 날만 새면 외치는 ‘통합’의 실현을 위해서라도 일부러 정파를 초월해 다양한 인사들을 초청해 추모식을 용서와 화합의 장으로 만드는 게 고인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 아니겠는가.

 

 여당도 잇단 불상사에도 불구하고 야당과 호남을 끌어안는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 때 되면 광주와 봉하마을을 찾아 예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진심으로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대선 공약이었던 대탕평인사가 실현되도록 끊임없이 청와대에 요구하고, 검찰을 비롯한 사정기관들이 정치적 의도로 무리한 표적 수사를 하지 못하게끔 감시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김 대표와 새누리당이 진심으로 광주 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노무현 정신을 추모하는 길은 바로 대탕평인사와 법치주의의 실현임을 유념하기 바란다.

 

[사설] '노무현 정신' 실종된 노무현 6주기

한겨레 2015-5-24

 

어언 세월이 흘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6주기를 맞았다. 지난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묘역에서는 여야 정치인 등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열렸다. 고인의 6주기를 맞는 오늘의 상황은 처연하다. 그가 그토록 깨려고 노력했던 냉전시대 논리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낡은 기득권 질서는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무엇보다 그가 몸담았고 사랑했던 야당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중심에는 노무현이 있다.

'친노'라는 말이 지금처럼 야당 내부에서 뜨거운 감자로 등장한 적도 없었다. 4·29 재보궐선거 이후 격화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분은 바로 '친노' 대 '비노'의 싸움으로 묘사된다. 심지어 '친노'의 반대말이 '호남'이 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역구도 타파가 고인의 평생 염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고 슬픈 현실이다.

애초 '친노'라는 말은 보수세력이 만들어낸 정치적 프레임이라는 성격이 강했다. 특권 타파 등 '노무현 정신'에 방점이 찍힌 게 아니라 배타성과 독선, 패거리 등의 부정적 의미를 함축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말은 어느 틈엔가 야권 공용어가 돼버렸다. 이른바 비노 세력은 보수의 프레임을 빌려 상대를 비판해왔고, 친노는 스스로 배타적인 패거리 정치의 이미지를 확대재생산함으로써 이 단어의 부정적 의미를 확장시켰다. 결과적으로 야권 정치인들이 모두 힘을 합쳐 고인을 욕보이고 있는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의 6주기에 마주한 이런 참담한 현실에 대해 과연 야당 정치인들은 깊이 반성하고 있는가. 아니면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입으로만 노무현 정신을 외치고 있는가. 지금 야당 정치인들에게 절실한 과제는 '친노'를 계파 갈등의 뜻이 아니라 고인이 남긴 가치를 따른다는 본래의 의미로 되돌리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다.

노무현 정신을 규정하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쩨쩨하지 않음'이야말로 지금 시점에서 야당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할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역정은 소소하게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옳은 일이라면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 온몸을 던졌다. 그러나 지금 야당 정치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쩨쩨하기 짝이 없다. 자기를 과감히 버리고 편협한 이해관계를 훌쩍 털어버리기보다는 쉬지 않고 정치적 주판알을 튕기기 바쁘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야당의 '혁신기구'가 수백번 만들어져도 혁신과 변화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



[사설] 전직 대통령 아들의 처신

조선일보 2015-5-25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모식에서 노 전 대통령의 아들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공개적으로 면박(面駁)하고 참석자 일부가 김 대표에게 물병을 던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야당 내 비노(非盧) 김한길·박지원 의원에게도 '쓰레기' 같은 욕설과 야유가 쏟아졌고 새정치연합을 탈당해 광주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천정배 의원은 '배신자'라는 비난과 함께 물세례를 받았다. 반면 문재인 당 대표에겐 '힘내라'며 이름을 연호하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 추모식이 정치 갈등 현장으로 뒤바뀐 것이다.

 

 

새누리당 대표가 노 전 대통령 공식 추모식에 참석한 것은 김 대표가 처음이다. 이날 김 대표를 향한 공격의 포문은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열었다. 유족 대표로 인사말을 하려고 마이크를 잡은 노씨는 "이 자리에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 오셨다"며 앞 좌석의 김 대표를 바라봤다. 이어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반성도 안 했다"며 "(2012년 대선 때 김 대표가) 전직 대통령이 서해 NLL(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며 피를 토하듯 대화록을 읽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국가 기밀문서를 뜯어서 읊어대고 국정원 동원해 종북 몰이 해대다가… 불쑥 나타나시니 진정 대인배의 풍모를 뵙는 것 같다"고 했다. 노씨는 "오해하지 마라. 사과나 반성 필요 없다" "정치, 제발 좀 대국적으로 하시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일부 참석자가 "노 전 대통령이 환생한 것 같다" "속이 시원하다"며 손뼉을 쳤다.

 

노씨의 발언은 미리 써 온 원고에 들어 있는 내용이라 한다. 상주(喪主)가 문상 온 손님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려고 작심하고 준비했다는 뜻이다. 이날 노씨는 전직 대통령 아들로 처신하기보다는 친노의 행동대장으로 나섰다. 노씨 눈에는 그저 자신의 비아냥과 냉소, 조롱이 뒤섞인 독설에 환호하는 일부 열성 친노 지지자들만 보였던 모양이다. 노씨의 발언에 대해 실망과 답답함,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는 대다수 국민의 마음을 헤아렸을 리 만무하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문재인 대표다. 문 대표는 행사 후 "노무현의 이름을 앞에 두고 친노·비노로 분열·갈등하는 모습이 정말 부끄럽다"며 야당 내 친노·비노 갈등을 그만두자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노씨가 추모식에서 바로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김 대표를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 일에 대해선 입을 닫았다. 문 대표는 노 전 대통령 유족과 친노 지지자들이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는 친노 세력의 좌장이다. 그런 문 대표가 이번 추모식에서 벌어진 불상사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넘어가는 것은 정치적 책임 회피다. 그간 입만 열면 '국민 통합'을 외쳐온 문 대표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얼마 전 광주에서 열린 5·18 추모식에선 문 대표가 야유와 비난을 받았다. 여기서도 김무성 대표는 욕설·물세례 봉변을 당했다. 두 행사 모두 야권 핵심 지지층이 모인 자리였다. 야당의 갈등이 이제는 한국 정치를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씨의 주제넘은 발언이나 문 대표의 침묵은 야당의 위기를 더 키울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