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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후쿠다 전 고문의 '리셋' 조언, 삼성만 들을 일인가

바람아님 2015. 6. 13. 07:57

세계일보 2015-6-12

 

후쿠다 다미오 전 삼성전자 디자인 고문이 삼성의 신(新)경영 선언 22주년을 맞아 "지금까지 성공한 기억을 모두 잊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리셋(Reset)"이란 쓴소리를 했다. 국가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인 삼성에 신발끈을 다시 조이라고 당부한 것이다. 삼성 사람들만 새겨들을 고언이 아니다.

후쿠다 전 고문은 그제 삼성 사내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은 이제 글로벌 1위 기업이라 목표로 삼을 곳이 없다"고 했다. 추종 전략의 시대는 저물었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는 "미래에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라면서 "지금 준비하면 5년 후에 답이 나오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10년 후 삼성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후쿠다 보고서는 이젠 유효하지 않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신경영은 잊으라"고 한 것이다.

후쿠다 보고서는 1993년 삼성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담아 이건희 회장에게 제출된 보고서다. 이 회장은 보고서를 읽고 그해 6월7일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메시지로 널리 알려진 신경영 선언을 했다. 파급력은 대단했다. 삼성은 혁신·도전 필요성에 대한 전사적 공감을 바탕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삼성이 글로벌 1위 기업으로 탈바꿈한 계기가 된 것도 신경영 선언과 후쿠다 보고서다.

그 보고서를 작성해 삼성 변화를 견인했던 후쿠다 전 고문이 직접 '리셋'을 요구한 것은 날카롭고 통렬하다. 거듭 되새겨야 한다. 옛 성공에 안주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세계 굴지의 기업이 한둘 아니다.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하고도 기존 필름시장 기득권에 연연하다 쇠퇴의 길을 연 코닥이 전형적이다. 핀란드 국부를 일구던 노키아의 흥망사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은 차제에 현실에만 안주하면 무덤을 파게 된다는 교훈을 곱씹어야 한다.

새 출발을 위한 새 고민이 필요한 것은 기업만이 아니다. 후쿠다 고언은 대한민국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경종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1950년 6·25전쟁 이후 불과 두 세대 만에 산업화·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2010년에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G20 의장국이 되기도 했다. 세계가 놀라워하고 부러워한다. 하지만 옛 성공의 기억만으로, 빛바랜 성공 방정식만으로 더 나아갈 수는 없다는 점이 날로 분명해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기로에 서 있다.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합류하느냐, 이미 지나친 것으로 여겨졌던 중진국 함정에 뒤늦게 빠지느냐의 갈림길이다. 새 성공 방정식을 찾아야 한다. '리셋'이 요구되는 것이다. 국가와 국민이 새 출발을 하려면 후쿠다 고언에 절실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