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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그림으로 배웠네](22) 에곤 실레…짐승처럼 솔직했던 그 남자

바람아님 2015. 6. 20. 22:04

[중앙일보] 입력 2015.06.19

 

경고, 조금 야할 수 있습니다


‘여자는 늘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 태어나서 이 말을 족히 삼천번은 넘게 들었다. 덕분에 어렸을 적 나는 늘 뻣뻣한 여자였다. 스킨십은 어색하고 불편했다. 부모님을 속이고 나쁜 짓을 하는 것만 같았다. 스킨십을 할라치면 내 머릿속은 항상 복잡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걸 누구에게 들키면 어쩌지’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태어나서 딱 한번, 죄책감으로 온전히 해방됐던 때가 있었다. 그를 생각하면 나는 ‘에곤 실레(Egon Schiele)’가 떠오른다.

그래도 수위를 조절했지요


요절한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 에곤 실레(1890~1918). 그의 그림들은 절대로 아름답지 않다. 색감은 어둡고 분위기는 눅눅하고 암울하다. 그의 그림에는 주로 마르고 뒤틀린 육체들이 뒤엉켜있다. 주인공들은 볼품없고 초라하다. 하지만, 그들은 이상하리만큼 당당하다.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노골적으로 확신에 차있다.

그 역시 그랬다. 어설픈 감언이설로 육체적인 욕망을 분칠하지 않았다. 사랑을 표현하는 데 당당했고 거리낌이 없었다. 주저하거나 망설이지도 않았다. 느끼는 그대로 원하는 그대로 여과 없이 행동했다. 강렬하리만큼 직선적이었다. 어린아이처럼 때론 짐승처럼 그는 감정 표현에 솔직했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


처음 나는 그런 그가 불쾌했다. 낯설고 무섭기까지 했다. 나를 무시하는 건가 가볍게 보는 건가 함부로 대하는 건가. 혼자서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망설일 틈조차 주지 않았다. 거칠게 밀려들었고 깊게 파고들었다. 서서히 그런 그가 익숙해졌다. 그리고 나는 점점 자유로워졌다.



거센 불길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서로를 마른 장작처럼 내던지며 불을 지피던 어느 날 우린 깨달았다. 욕망과 불안과 초조함으로 가득한 우리에게 이제 남은 건 재뿐이란 사실을. 아낌없이 타오른 열정의 바닥에는 하얗게 세어버린 잿가루가 수북했다. 당연한 이별이었다.

자화상은 옷을 입었군요


에곤 실레의 삶 역시 짧지만 강렬했다. 초기 실레는 스승이었던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선보였으나 점차 독자적인 스타일을 발전시켜 나간다. 그는 관심사는 주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내밀한 관능적 욕망, 그리고 인간의 실존을 둘러싼 고통스러운 투쟁이었다.

실제로도...

 

1918년 클림트가 사망하고 실레는 오스트리아를 이끄는 예술가의 지위에 올라선다. 하지만 같은해 10월, 실레의 아내가 당시 유럽을 휩쓸던 스페인 독감에 걸려 사망한다. 아내와 뱃속의 아기를 잃고 슬퍼하던 실레 역시 스페인 독감으로 3일 뒤에 세상을 떠난다. 그의 나이 28살, 그럼에도 그는 미워할 수 없는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원초적 본능 기자 basicinstinct@joongang.co.k*r

※기자 이름과 e메일 주소는 글 내용에 맞춰 허구로 만든 것입니다. 이 칼럼은 익명으로 게재됩니다. 필자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중 한 명입니다.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