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6.23 박상미 갤러리 토마스 파크 대표)
- 박상미 갤러리
- 토마스 파크 대표
여기서는 종종 내 유머가 썰렁해짐을 느끼곤 했던 거다.
가만히 보니 서양식의 위트 섞인 유머는 거의 회장님 전용이었다.
왜냐하면 서양식 유머는 너와 내가 평등하다는 전제하에 구사되는 위트이고, 한국에서의 인간관계는
대부분 '갑을'과 같은 권력의 위계 관계로 규정되기에 이러한 위트는 자칫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건 '상위'의 사람만이 위트 섞인 유머를 구사할 수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개콘에 나오는
유행어나 던지며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 고작이다.
그리고 '구라'라는 것이 있다. '저건 구라야' 할 때는 그저 뻥이나 과장이라는 의미로 쓰이는데,
'한국의 몇 대 구라'와 같은 맥락에서는 유머의 한 장르, 또는 그 유머를 구사하는 사람을 일컫는 듯하다.
구라는 일종의 저급한 고급 유머로, 뻥과 과장, 때로 '비도덕적'인 벗어남을 포함한다.
누군가는 구라를 일컬어 현실의 '증폭'이라 했는데, 이는 레토릭으로 성취된다.
결국 구라는 '말발'이고, 걷잡을 수 없는 말발은 퍼포머(performer)라는 고독한 존재를 낳는다.
그리고 이 '열외'의 존재는 종종 권력의 위계 관계를 비켜간다.
스스로의 말발로 스스로 망가지며 웃기는, 아무도 못 건드리는 존재인 것이다.
구라의 핵심은 픽션이다. 뻥이 섞이질 않으면, 현실의 도덕적인 반영이라면 웃길 수가 없는 것이다.
꿈도 신화도 픽션이다.
픽션에 울고 웃지 않는 인간이란 없고 인간의 삶 또한 종종 픽션 같은 희극과 비극으로 이루어진다.
미국에서는 자신의 실패를 스스로 비웃으며 위트를 끌어내는 유머를 가장 고급한 것으로 친다.
나의 실패 자체는 비극도 희극도, 고급도 저급도 아니다. 어떤 식으로 승화해내느냐가 중요할 뿐.
망가지고 나서 올라갈 때 웃음과 같은 고양(高揚)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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