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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부부싸움의 道

바람아님 2015. 7. 14. 08:40

세계일보 2015-7-10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은 옛말이다. 엇나간 싸움은 부부간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깊은 상처를 남긴다. 자칫 불길이 번져 친가와 처가의 집안 전체로 번지는 일도 없지 않다. 물이 아니라 가정을 태우는 불이 되기 십상이다.

실제로 부부싸움이 불로 번지는 일은 허다하다. 엊그제 충남 홍성에선 60대 노인이 아내와 말다툼을 하다 자기 집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질렀다. 성난 불길은 부부가 아끼던 장롱과 침실을 몽땅 잿더미로 만들고 말았다. 지난 5월에는 경기도 성남에서 30대 부부와 갓난아기가 심한 화상을 입었다. 남편이 부부싸움 끝에 집에 불을 지른 탓이라고 한다.

 

사랑으로 짝을 맺은 게 부부라지만 같이 살다 보면 갈등이나 다툼은 피할 수 없다. 남자와 여자는 태고 이래로 진화한 방식이 다르다. 각기 살아온 성장환경도 같지 않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한 집에서 살자면 자연히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소한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선 지켜야 할 규범이 있다.


부부싸움에도 도(道)가 있다. 싸움이 잦은 부부라면 지신현의(智信賢義)라는 '부부싸움 4계'를 특히 명심해야 한다. 부부싸움에서 지혜(智)란 던지기나 깨뜨리기 등 상대의 주특기를 알고 덤비는 것이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막나가는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물리적인 폭력은 절대 금물이다. '설마 정통으로 나를 때리진 않겠지' 하는 믿음(信)을 배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값나가는 물건은 던지지 않는 현명함(賢)도 있어야 한다. 전후 복구비용이 커지면 큰 후유증이 남기 때문이다. 제일 중요한 것이 네 번째 규범이다. 싸움이 끝나면 서로 멍든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의로움(義) 정도는 있어야 한다. 이것만 잘 지켜도 부부싸움이 파경으로 흐르는 일은 막을 수 있다.

신라 화랑의 세속5계에는 임전무퇴(臨戰無退)라는 것이 있다. 전쟁에 임하여 물러서지 않는다는 뜻이다. 전쟁에서 후퇴란 곧 영토나 평화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가정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부부가 서로 한 발짝씩 양보하면 오히려 평화가 찾아온다. 임전무퇴가 아니라 '임전유퇴(臨戰有退)'의 덕목이 필요하다. 아마 세상의 부부들이 가슴에 새길 마지막 5계가 아닐까.

배연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