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5-7-16
주는 것 없이 받기만 좋아하면 노인이고, 대가 없이 베풀기를 좋아하면 어르신이라고 한다.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면 노인이고, 아직도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하면 어르신이란 말도 있다. 간섭하기 좋아하면 노인이고, 인내하며 지켜보면 어르신이란 얘기도 있다. 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포인트는 좀 다르다. 입과 귀다.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면 노인이고,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하면 어르신이다. 자기가 항상 옳다고 우기며 말로써 상대를 가르치려 들면 노인이고, 상대의 얘기를 끝까지 경청하고 이해하려고 애쓰면 어르신인 것이다.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은어나 비속어 때문에 세대 간 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노인, 아니 어르신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언어 사용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60세 이상 연령층의 50.3%가 젊은 세대와 대화를 하거나 문자를 주고받을 때 소통이 잘 안 된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으로 주고받는 문자를 보면 거의 암호 수준이다. 극혐(극도로 혐오하다), 열폭(열등감 폭발) 같은 말은 대충 감이라도 잡을 수 있지만 핵노잼(정말 재미없다), 낫닝겐(인간이 아니다), 어그로(관심 끌기), 패드립(상대방의 부모나 가족을 비하해 놀리는 것)처럼 어원을 알기 힘든 은어는 마치 무슨 외계어 같아 감조차 잡기 어렵다. 아무리 입을 닫고 귀를 쫑긋 세워도 말뜻을 모르니 이해가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니 소통이 안 된다.
청소년이 사용하는 언어의 30% 이상이 은어와 비속어라고 한다. 꼰대 같은 노인네 소리 안 들으려면 TV 예능 프로라도 열심히 보고 배워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노잼’과 ‘꿀잼’의 차이를 안다고 어르신이 되는 건 아니다. 열린 마음으로 귀를 열 때 어르신이다. 이순(耳順)이 그냥 이순이겠나.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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