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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갑식 기자의 기인이사(奇人異士)(5):정정수와 소쇄원(上)

바람아님 2015. 7. 17. 09:52

(출처-조선일보  2015.04.29 Photo By 이서현)

문갑식 기자의 기인이사(奇人異士)(5):정정수와 소쇄원(上)
미대 나온 서양화가보다 '신통한 입시강사'로 더 유명한 사람


정정수(鄭正洙ㆍ62)는 꽤 유명한 화가입니다. 

그는 서울 강남의 아줌마들 사이에서 ‘홍대 미대 나온 서양화가’보다 ‘신통한 입시강사’로 더 명성을 얻었습니다. 

1년에 딱 30명의 학생만 받아 27~28명을 일류 미대(美大)에 보냈으니 찬사를 받을 만 했겠지요. 

그런 그가 조경가(造景家)로 변신합니다. 경기도 파주 벽초지(碧初池)수목원이 그의 데뷔작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손댄 경기도 성남 삼성 래미안아파트 ‘초심원’이 2008년 세계조경가대회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미술과 건축을 ‘하나’로 만든 것이지요.


여자의 변신(變身)에는 이유가 있다지요. 그렇다면 남자의 ‘둔갑’에도 사연이 있겠습니다. 
서울 서초동 빌라에 살던 그는 돌연 전남 구례 지리산 자락 산동마을로 이사 갔습니다. 산수유에 푹 빠져서가 아니었습니다. 
천재 아들과 담도암(癌) 때문이었습니다. 큰아들은 여섯살 때 목성(木星)의 질량을 구했다고 합니다. 
A4용지 7장에 빼곡히 수식을 채웠다지요.

IQ를 재보니 ‘측정불가’판정이 나왔습니다. 
지능지수가 210이었다는 ‘김웅용의 재림(再臨)’같았는데 한국사회에선 그건 행운이 아니라 불운입니다. 
아시아의 3대 수수께끼 중 하나가 한국이 공산국가가 아니란 말이 있습니다. 
‘평등’에 목매기 때문인데, 이런 토양에서 남과 다른 건 장애라고 정정 수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맹모삼천(孟母三遷)의 ‘한국판’이 시작됐는데 하회는 달랐습니다.


벽초지 연못에는 나무 데크가 설치돼있다. 관람객들이 연못 한복판으로 걸어가 연꽃과 그 사이를 헤엄치는 잉어를 보고 즐길 수 있다.벽초지 연못에는 나무 데크가 설치돼있다. 
관람객들이 연못 한복판으로 걸어가 
연꽃과 그 사이를 헤엄치는 잉어를 보고 즐길 수 있다.


―천재가 장애라는 게 충격적인 말입니다.
“겁이 덜컥 났어요. 부족해도 넘쳐도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거잖아요.”

―우리나라에 영재교육이란 게 없기 때문인가요.
“그때부터 좋다는 학교 가기 위해 ‘위장전입’도 
해봤습니다. 결과는 같았어요. 
영재가 아닌 사람이 어떻게 영재를 가르치겠어요. 공부 때문이 아니라 지루한 수업을 받느라 지친 
아이를 보고 결심했습니다. ‘떠나자’고.”

―한국에선 맹자의 어머니, 아니 아버지도 소용없군요.
“없었을 겁니다.”

―본인이 유명강사여서 더 학교에 실망한 거 아닌가요.
“그런 부분도 있긴 해요. 제가 압구정동에 차린 ‘정정수학원’엔 학부모들이 몰렸어요. 시골에서 올라온 분들이 줄을 이었죠. 
제가 가르치는 방식은 한가지입니다. 제가 그리는 게 아니라 학생이 그리게 하는 거죠.”

―그게 무슨 소린가요?
“미술교육을 보면 선생님들이 학생작품에 손댑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자기가 아는 대로 학생을 이끄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하는가, 그건 선생님들이 ‘그거’밖에 모르기 때문이죠. 
이러니 학생들은 지겨워합니다. 창의성은 더더욱 바랄 수도 없고요.”

―그럼 어떻게 했는데요.
“전 학생들이 하는 대로 놔두다가 딱 필요한 조언만 합니다. 그럼 학생들이 직접 수정하죠, 알아서. 
이렇게 하면 1주일 걸려 그릴걸 2~3일 만에 해내니 진전이 빨라져요. 
미술수업 시간이 줄어들면 이점이 많습니다.”
정정수는 유명화가일뿐 아니라 조경가로, 학원가의 스타강사로, 자녀 교육을 직접 시킨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정정수는 유명화가일뿐 아니라 조경가로, 학원가의 스타강사로, 
자녀 교육을 직접 시킨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뭔데요?
“공부할 시간이 많아지잖아요. 입시성적이 좋아질 수밖에 없죠. 이건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예요.”

―무슨 소립니까.
“수학만 해도 그래요. 얼마나 재미있는 과목입니까. 그런데 학생 중에서 수학 좋아하는 학생 본 적 있습니까? 
지겨운 공식만 외우라고 하니 그렇죠. 공식이 나온 과정을 설명해줘야 하는데 선생님들이 모르니 암기시키고, 
그러니 학생들은 흥미를 잃게 되는 겁니다.”

―제가 그런 능력 있었다면 수백명 받아 떼돈 벌 텐데….
“하하. 제가 신경 써서 봐줄 수 있는 인원이 딱 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지리산 자락으로 간 겁니까.
“궁리를 많이 했어요. 결론을 내렸죠. 아이에겐 책보다 자연과 접하게 만들어주는 게 더 좋겠다고. 
도서관에 쌓여 있는 그 많은 책이 다 자연의 극히 일부분을 다룬 거잖아요.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게 하고 전 걔가 원하는 책을 사다주면 되는 거죠. 
선생님 한 분에 학생 수는 딱 20명 정도인 학교, 그런 델 찾은 겁니다.”

―산동마을이 이맘때면 산수유로 뒤덮이죠.
“산수유 때문이 아니라 처가가 그쪽이었습니다.”

―시골이면 과외 시키는 것도 어려울 텐데 컴퓨터로 원격교육시켰나요?
“초등학교 6학년 끝날 때까지 컴퓨터는 사주지도 않았어요.”

―장남은 지금 어떻게 됐나요.
“언론에도 많이 보도돼서…절대 이름은 쓰지 마시고 지금 외국 가 있어요.”

―자녀가 셋이라는데 다 천잽니까.
“둘째아들은 카이스트 석사 한 뒤 박사과정 밟고 있고 셋째딸은 미대갔는데 유리조형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