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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요리 잘하는 남자가 사랑받는 이유-굴요리로 여성 유혹, 식탁을 캔버스처럼…

바람아님 2015. 8. 17. 01:29

매경이코노미 201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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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장(Le Verrou)’, 1776~1779년,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젊은 남자가 여성과 은밀한 시간을 갖기 위해 빗장을 걸어 잠그는 장면. 카사노바는 맛있는 음식으로 여성을 유혹할 수 있었다.

 

셰프들이 대세다. 미국에서도 그들의 인기가 할리우드 스타급이다. 스타들은 요리사와 절친이 됐고, 대중은 그들을 연예인으로 치부한다. 그렇게 되면 요리는 차선이 되고 들러리가 된다. 때로는 본업을 잊은 셰프들의 처세가 민망하고, 먹는 거 갖고 너무 장난친다 싶다. 어쨌든 대중은 그들에게 환호하고, 때론 그들의 창의력이 예술을 능가할 때도 있다. 헌데 이런 셰프들 때문에 대한민국 중년 남자들이 고달프다. “이제 요리까지 잘해야 돼?!” “맛집만 꿰고 있어도 되는 거 아냐?” 이렇게 생각하는 남자는 그래도 귀엽다. 아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관심한 남자들이 문제(?)다.

요리에 대한 관심이 왜 중요한가? 요리 잘하는 남자가 유머 있는 남자만큼 여자들에게 인기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삶에 스토리가 생긴다는 것이고, 인생에 풍요롭고 다양한 콘텍스트(context)가 생겼다는 걸 뜻한다. 다시 말해 음식을 통해 시각, 후각, 미각 등의 감각과 취향, 여성성, 자연에 대한 시각, 문화 등 여러 가지 층(layer)이 생긴다는 것이다. 예컨대 음식과 어울리는 술 공부가 필수적이게 되고, 제철 식재료는 자연에 대한 섭리를 알려주며, 향신료는 세계 무역 네트워크까지 알게 해준다. 그러니 음식은 단지 먹거리가 아니라 문화이자 스토리텔링의 무한한 보고가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요리는 추억이다. 추억을 심어주는 것만 한 유혹이 없다. 여자들은 감각을 사용하게 하고 자극시키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면,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다면, 맛있는 요리를 해주는 것이 좋다. 혹 요리를 못한다면 멋있거나 맛있는 식당으로 데려가면 된다. 음식을 주문할 때 먹을 만큼만 시키면 안 된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음식을 시켜야 한다. 여자는 그것을 후한 애정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먹는 것 앞에서 인색하면 완전히 낭패다. 때때로 여자들은 맛있는 디저트 가게를 알고 있거나 커피를 맛있게 탈 줄 아는 세심한 남자를 매력적으로 생각할 때가 있다.

유혹남 카사노바는 음식에 관한 한 엄청난 일화들을 가진 인물이었다. 카사노바의 식단은 바로 그의 인생의 희로애락과 흥망성쇠를 그대로 보여준다. 불확실한 천국보다는 현세의 삶을 탐닉하고 영위했던 그에게 여자와 요리는 둘도 없이 소중한 것이었다. 치즈사전을 출판하려 했을 만큼 요리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카사노바는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서라도 요리가 필요했다. 수많은 저작을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음식을 이용해서 여성을 유혹한 사례들이 넘쳐난다. 그는 쾌락의 요리로 여성을 도취시켰지만 절대로 농락하지는 않았다. 카사노바는 늘 강조했다. “아름다운 여성 앞에선 음식도 제대로 먹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카사노바는 감옥을 탈출해 파리에 도착한 뒤 재정전문가가 돼 복권을 발행하고 백만장자가 된다. 그는 엄청난 돈으로 저택을 빌려 왕궁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축제와 만찬을 열곤 했다. 사람들은 카사노바의 파티에 초대받길 열망했다. 특히 카사노바의 ‘치킨 프리카세’는 소문이 자자했는데, 그는 이 음식을 만들기 위해 특별히 어두컴컴한 방 하나를 마련해 그곳에 닭을 풀어놓고 쌀을 먹여 키웠다. 이렇게 키워 만든 닭고기는 눈처럼 하얗고 입안에서 살살 녹을 정도로 맛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파티를 열기에는 저택이 너무 좁다고 판단, 당시 유명 인사들을 부르봉 호텔로 초대해 만찬을 열기에 이른다. 카사노바는 샐러드를 손수 만들었고 당시 왕조차 별로 먹어보지 못한, 파리에서 최고의 진미로 손꼽히던 철갑상어를 선보였다. 파리의 사교계에서 그의 인기는 잠시 동안이었지만 왕가를 추월할 정도였다. 그때 선보였던 요리는 바질 거품 수프, 치킨 프리카세, 카사노바식 샐러드, 철갑상어찜, 양송이 라구, 베네치아식 토끼요리, 카사노바식 배요리 등이었다.

‘꿈(The Dream)’, 1932년, 파블로 피카소. 피카소 역시 요리로써 여성들을 새로운 감각의 세계로 이끌었다. 특히 말년에는 아주 친한 소수 지인들만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카사노바의 식단에 성욕을 자극하는 효능이 든 음식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양파, 파슬리, 후춧가루, 굴, 마늘, 바질, 닭 볏, 아티초크, 캐비어, 바닐라 열매와 같은 간단한 재료와 양념은 사랑의 힘을 북돋워주는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양파는 영양소가 풍부해 정력을 키워주는 식품으로 유명했다. 특히 여자들과 먹었던 음식 중 굴에 관한 일화는 매우 에로틱하다. 최음제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굴은 먹는 행위 자체로 사랑의 유희가 된다. 카사노바는 로마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두 처녀를 레스토랑으로 초대, 굴요리를 대접했다. 굴 먹는 방법을 시범으로 보여줬는데, 굴즙을 삼키지 않고 입에 담고 있는 방법이라든지, 상대방 입 속으로 굴과 굴즙을 밀어넣는 야릇한 방법들을 가르쳐줬다. 그녀들은 굴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이 죄악일 거라고 생각할 만큼 이런 음식을 먹는 행위에 매혹됐다. 그러는 가운데 어떤 야한 포즈로 넘어갔을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

18세기 로코코 시대에 카사노바라는 미식가가 있었다면, 20세기에는 단연코 피카소를 꼽을 수 있다. 피카소 역시 요리로써 여성들을 새로운 감각의 세계로 이끌었다. 생각해보라. 음식이야말로 시각, 청각(요리 만드는 소리), 후각, 미각, 촉각 등 모든 감각을 열어놓게 만들지 않는가? 그러니 피카소가 여성을 유혹할 수 있는 힘은 그의 탐식 혹은 미식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공한 피카소는 음식 먹는 행위를 마치 중요한 의식처럼 생각했다. 때로는 상을 차리는 가정부를 심하게 꾸짖곤 했는데, 식탁을 캔버스처럼 생각한 피카소가 가정부의 미적 센스가 형편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스페인식 볶음밥인 파에야를 좋아했던 그는 점심으로 파에야를 실컷 먹은 후, 투우를 보러가곤 했다. 독설가기도 한 피카소는 음식에 대한 혹평으로 사람들을 종종 난감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루는 피카소가 지인의 집에 초대받았다. 피카소가 파에야를 좋아한다는 소문을 들은 부인은 파에야를 정성껏 푸짐하게 준비했다. 주인집 여자는 음식을 먹으면서 왠지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짓는 피카소에게 물었다. “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세요? 무엇이 잘못됐나요?” “아니요, 아니요, 마담. 홍합, 바닷가재, 오징어, 사프란, 쌀 등등 모두 들어갔네요. 아! 그런데 요리사가 빠져 있군요!” 어떤 요리평론가의 독설이 피카소의 그것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피카소가 살던 시대는 가난이 주는 은총이 존재하던 시대였다. 음식 하나를 두고도 얼마든지 오랫동안 풍부한 담론을 펼칠 수 있었다. 피카소는 성공한 이후에도 화려한 식탁보다는 소박한 식탁을 좋아했던 것 같다. 말년에 피카소의 부인이었던 자클린느 로크는 예기치 않았던 장소, 즉 지하실, 다락방, 작품보관실, 비어 있는 게스트하우스 등에서 피카소를 위한 밤참 자리를 마련했다. 예술가의 부인다운 창의적인 면모가 아닌가! 피카소는 거창한 식탁보다는 주방에서 먹다 남은 차가운 닭고기 요리와 채소 수프만 차려놓고도 파티를 열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아주 친한 몇몇 사람들, 추리고 추려낸 친구들과 애완동물만이 피카소의 마지막 파티에 참석할 수 있었다.

손님이 도착하기 몇 시간 전, 요리를 준비하는 시간은 황홀하다. 우선 음식을 준비하면서 그 싱싱한 재료들을 식탁이라는 캔버스 위에 펼쳐놓는다. 마치 세잔의 정물처럼 아주 조형적이다. 그리고 와인을 미리 따 혼자 홀짝거리며 음식을 만든다. 그러면 손님이 올 때쯤 약간 상승 무드가 된다. 자연스럽게 환대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떤 요리든 상관없다. 당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만한 음식을 정하자.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문화사적 에피소드 하나쯤을 곁들이자. 아님 이 음식을 준비하면서 느낀 자기 감정을 살짝 곁들이자. 음식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음식에 딸린 스토리는 추억이 되고, 그 추억은 바로 예술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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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 미술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19호 (2015.08.05~08.11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