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5-8-7
헨리 푸셀리는 스위스 출신 화가로 영국에서 활동했다. 런던의 왕립아카데미 교수로 명성이 높았지만 사후 잊혀졌고, 현대에 와서 재평가되었다. 아직 정신분석학과 같은 무의식과 욕망이라는 개념에 천착한 학문적 연구가 부재한 시절, 푸셀리는 셰익스피어와 밀턴 같은 영국의 대문호에 영감을 받아 ‘꿈과 악몽’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1781년 ‘악몽’을 전시했을 때, 영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작가는 꿈속에서 악마한테 시달리는 여인을 묘사한 것이라고 했지만, 두 기이한 괴물은 성적 쾌락을 탐닉하는 퇴폐적인 장면으로 간주되었다.
헨리 푸셀리, ‘악몽’, 1781년, 캔버스에 유채, 101×127㎝, 미국 디트로이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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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커튼 사이로 머리를 내민 백마는 섬뜩한 눈과 흥분한 듯한 콧구멍과 입, 발딱 선 귀, 불길이 타오르는 듯한 갈기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잠든 여성의 야성 혹은 마성을 의미한다. 더욱 무시무시한 대상은 여성의 배 위에 묵직하게 올라탄 괴물이다. 뿔이 난 머리, 툭 튀어나온 눈, 울퉁불퉁한 미간, 억센 입술, 두둑한 턱은 물론 손톱이 긴 굵은 손가락, 뱀처럼 생긴 귀 등은 추와 악의 표상이다. 유럽 설화에는 잠든 여성을 꿈속에서 강간한다는 남자 몽마(夢魔)가 있는데, ‘위에 올라탄다’는 뜻에서 ‘인큐버스(incubus)’라고 부른다.
이처럼 공포와 쾌락을 주는 몽마가 여성에게 음란한 꿈을 꾸게 만드는 괴물이라는 것. 사실 이 그림은 푸셀리가 연모했으나 결혼을 거절당한 안나 란돌트에 대한 복수의 환상이라고도 한다. 당시 이 그림은 판화로 복제돼 수많은 사람들이 소장했다. 가장 인상적인 소장처는 프로이트의 상담대기실이었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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