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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남산은 동양의 에덴동산.. 풍수의 좋은 기운 넘치는 곳"

바람아님 2015. 9. 8. 10:16

 세계일보 2015-9-7

 

창가 너머로 용트림하는 듯한 노송들의 미끈한 몸매가 펼쳐져 있다. 자연석인 경주 옥석도 장승처럼 노송 곁을 지키고 있다. 오래전부터 작가가 간직한 괴석도 노송 아래에 웅크리게 했다. 경주 남산 자락 박대성(71) 화백의 작업실 풍경이다. 신라인을 자처하며 남산에서 먹에 인생을 걸겠다며 내려간 지도 어언 1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한 번 내려오라 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늘상 길이 엇갈렸다. 내려갈 참엔 그는 공교롭게도 서울에 와 있었다. 그의 작품 기증으로 최근 개관한 경주솔거미술관을 둘러본다는 핑계가 오랜 숙원인 ‘경주 만남’을 가능케 해주었다. 우선 가장 궁금한 것은 ‘남산 16년’의 소득이었다. 

 

 

창문 밖 노송의 운치가 일품인 작업실 풍경에 녹아들고 있는 박대성 화백. 그는 오래 묵을수록 약효가 배가되는 산삼 같은 야성을 지키고 싶어 한다. 그에겐 제도권 교육이 6년근 인삼이라면 독학으로 터득한 것은100년 산삼 같은 것이다.

“풍수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소득이야. 세상은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과,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는 게 있지. 보이지 않고 냄새도 안 나지만 그 기운이 대단해. 현대인들이 놓쳐버린 가장 소중한 것이지. 보이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야. 보이지 않는 무한대의 세계가 동양의 정신사상이지.”

 

그는 무엇보다도 경주가 서울보다 뭔가 집중이 잘 돼서 좋다고 했다. 내방객이 별로 없으니 작업의 연결이 끊기지 않고 몰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산수화를 그리려면 풍수에 함몰할 수 있어야 돼. 산수화를 잘 그리는 이들은 예로부터 풍수에 능했던 이들이지. 겸재도 그랬지. 동양미학을 제대로 알려면 풍수를 알아야 하는 거야. 여백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것의 암시라고 할 수 있지. 그리지 않고 그리는 것 이상의 효과지.”

 

그는 풍수사상을 활용하고 감지해야 서구미술과 게임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동양회화사의 꽃이라 불렸던 중국 송나라 시대 화가들은 풍수에 능했다. 그림, 건축, 정원조경 능력이 탁월했다. 조선시대 경북궁 건축과 조경의 기본 설계에도 도화서 화원들이 참여했다. 그도 용산의 국립박물관 조경 기초설계에 관여했다.

 

그에게 한국화의 발전 방향에 물었다. 예전에도 여러 번 그에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독학으로 화업을 일군 그이기에 더욱 그랬다. 이젠 한국화의 거장으로 그가 꼽히고 있지 않은가.

“지필묵은 자연에서 얻어낸 것이라 자연의 이치를 담보하고 있다. 그래서 필법이라 하지 않는가. 지필묵의 고고한 기본 정신을 닦는 것이 관건이다. 내면으로 승화시켜 표출시켜야 깊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는 붓 잡는 방법부터 다르다. 손목을 움직이는 V필법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손목을 고정시켜 놓고 팔뚝으로 붓을 휘두른다. 온몸의 힘을 붓끝에 모아 쏟아내는 것이다. 중봉의 필법이다. 일필휘지의 기운생동이 뭔지를 알게 해준다. 붓끝을 장악하는 것은 만사를 장악하는 것과 같다. 혀끝, 손끝, 좆끝 등 ‘끝’에 의해서 인간 됨됨이가 결정되는 이치와 같다.

“붓 하나를 만드는 데 만 개의 털이 필요하다면 만 명의 군사를 가졌다는 말이다. 중봉은 붓끝으로 모든 털을 집중시킨다. 붓끝이 칼끝이 된다. 만 명의 군사를 한 군데 모아 힘을 쓰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편봉은 만 명의 군사를 가지고도 5000명의 군사밖에 쓰지 못하는 것과 같다.”

 

중봉을 터득하는 것은 털 하나라도 다른 짓 못하게 장악하는 일이라는 얘기다. 그것이 기운으로 나타나게 된다. 한 필체에 구상과 추상도 한데 어우러진다. 그는 중봉을 쓸 때 붓을 가다듬지 않는다. 붓을 움직이면서 동시에 가다듬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붓끝을 자주 가다듬으며 작업하는 것과 대비가 된다. 그가 먹에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먹은 만색의 왕도다. 중국에서 먹은 물질이 아니라 동양정신의 태동이라 했다. 추사도 먹은 문학이라며 포괄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먹은 불의 심판을 받은 그을음이 원료다. 다른 색과 달리 태양빛에도 환원이 안 된다. 그래서 정신적 요소가 강하다. 서양의 검정색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그는 새로운 발묵법으로 탁본 필법도 구현하고 있다. 탁본을 뜨듯이 붓을 툭툭 찍는 방식이다. 화폭에 강하게 힘이 박히는 모습이다. 야외신라불교박물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유적이 많은 경주 남산 산수풍경을 연꽃으로 환원시켜 그린 그림에서도 탁본필법을 볼 수 있다. 경주 남산은 그에게 어떤 존재일까.

“동양의 에덴동산이다. 신라불교를 꽃피게 한 성지라 할 수 있다. 창작과 창조의 기운이 충만한 곳이다.”

 

박대성 화백이 솔거를 떠올리며 그린 ‘노송도’. 그의 작업실 창문 밖 풍경을 그대로 옮겨 온 것이다.

 

심릉과 경애왕릉이 그의 작업실과 이웃해 있다. 자주 그가 산책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돌과 나무들이 절로 그림으로 환원되는 곳이다. 산책길에 두둥실 떠가는 구름은 용이 됐다. 독도스케치를 바탕으로 한 작품에 용이 등장한 배경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문무대왕 얘기가 문뜩 떠올랐다. 시신을 화장해 동해에 뿌리게 해 바다를 지키려 했던 문무대왕이 아니었던가. 왕을 화장한 사례는 그 어느 곳에도 없다.”

 

그림속 용은 여의주가 아닌 일장기를 움켜쥐고 있다. 일본에 ‘꼼짝 말라’는 메시지가 강하게 읽힌다. 풍랑과 세상 시끄러움을 잠재웠던 만파식적의 피리소리가 그림속에서 흘러나오는 듯하다.

“경주 남산, 아니 신라에는 신화가 많다. 그만큼 열려진 사고를 지녔다는 방증이다. 의미 부여를 할 줄 모르는 인간은 짐승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의미 부여가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작업실 창 너머 풍경을 그린 노송 그림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작가가 6살 때 서당 어른으로부터 들은 신라화가 솔거의 노송도를 현실화시킨 작품이다. 실제 소나무로 여겨 새가 날아와 부딪혀 죽었다는 전설이 아른거린다. 그림속 학은 백로로 바꿨다. 학은 너무 고전적인 것 같아 변화를 줬다.

 

소나무가 많고 번성한 곳은 예부터 길지가 많다. 통도사와 불국사, 경주 남산자락이 그렇다. 풍수의 좋은 기운이 넘치는 곳이다. 그는 신라 능원과 경주 남산이 천년세월을 훨씬 넘기고도 옛 자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명당이기 때문이란다.

옛날부터 왕릉 근처의 개천도 명당이란 얘기가 있듯이 그의 작업실도 명당이라 했다. 명당의 기운에 감응한 것이 그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글·사진=편완식 미술전문기자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