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송사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40대 요리사는 이렇게 단어의 음(音)을 이용한 말장난을 즐겨 한다. 그의 유머에는 ‘아재 개그’라는 별칭이 붙었다. 구닥다리 아저씨가 어떻게든 웃기려고 노력한다는 뜻이다.
최근 들어 훈계하기 좋아하는 중년 남성을 일컬을 때 ‘꼰대’ 대신 ‘아재’라는 단어가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국어사전에 아재는 ‘아저씨의 낮춤말’이라고 돼 있다. 경상도에선 삼촌뻘 집안 어른을 아재라고 부른다. 이런 말이 어떻게 꼰대라는 뜻을 얻어 젊은층 언어생활의 중심부로 진입해 하게 됐을까.
‘아재’의 탄생
서울의 한 세무회계법인에 다니는 이모(28)씨는 부서의 팀장 얘기를 할 때 아재라고 부른다. “우리 아재가 오늘 출근하더니…” 하는 식이다. 순댓국을 좋아하는 그 팀장은 1주일에 2, 3번 점심메뉴로 순댓국을 골라 함께 먹자고 한다. 혼잣말처럼 ‘요즘 애들은 패기가 없어…’ 하며 주말에도 종종 일감을 준다. 출근시간은 오전 8시30분이지만 30분 전에 사무실에 나와 늦게 오는 팀원들에게 눈치를 주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아재가 꼰대란 의미로 사용되는 대표적 사례는 이렇게 후배들이 ‘갑(甲)질’ 한다고 생각하는 회사 상사를 가리킬 때, 지하철 등에서 무턱대고 자리 양보를 요구하는 노인을 지칭할 때, 생각이 너무 다른 기성세대를 일컬을 때 등이다.
아재라고 불리는 이들은 그렇게 부르는 이들과 확연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정부부처 고위 공무원 A씨는 “더 편한 부서로 가고 싶어 하는 신입직원을 보면 주말에도 나와 일하던 예전 내 모습이 떠오른다”며 “얼굴 붉히기 싫어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좋은 변화인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팍팍한 일상을 사는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를 비꼬고 희화화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본다. 거침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와 충돌하는 지점에 아재란 단어가 있다는 것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5일 “상대적 약자인 젊은층이 강자인 기성세대를 향해 날릴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바로 언어”라며 “본래 가치중립적 단어였던 아재에 꼰대라는 부정적 의미를 더하는 식의 소극적 저항을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재 혹은 아재 문화
이 시대 아재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6·25전쟁 이후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던 사회 분위기가 아재 문화의 토양이 됐다고 설명한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부장적 문화, 군대 문화, 권위주의가 보상심리와 혼합돼 나타난 게 바로 ‘아재 문화’”라며 “남자가 (대체로) 여자에게 잘난 체하며 아랫사람 대하듯 설명하는 ‘맨스플레인(mansplain)’과 비슷한 원리”라고 설명했다.
청년들의 기성세대 비꼬기는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에도 아재나 꼰대와 같은 뜻을 갖는 ‘보시(bossy·우두머리 행세를 하는)’라는 단어가 있다. 다국적 리더십훈련기관 ‘창의리더십센터(CCL)’가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 201명에게 ‘보시’의 조건을 물었더니 나이를 중시하고, 과거 얘기를 주로 하며,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응답이 나왔다. CCL은 이를 토대로 ‘과연 내가 보시(꼰대·아재)인지’ 알아보는 ‘체크리스트’를 개발해 내놓기도 했다.
아재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흔히 ‘노무(노 모어 엉클·NO More Uncle)족’이라 불린다. 전문직 이모(52)씨는 지난 5월부터 매주 한 번씩 서울 강남의 스피치학원에 다니고 있다. 직원은 물론 가족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최신 화술과 유행어 등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씨는 “가족과 이야기를 많이 하려 한다. 고교생 아들에게 권위적인 모습은 통하지 않더라”고 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人文,社會科學 > 日常 ·健康'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의 향기] 펜으로 꾹꾹 눌러 쓴 손편지의 아름다움 (0) | 2015.11.08 |
---|---|
<뉴스G> 하루 몇 잔의 커피가 필요한가요? (0) | 2015.11.07 |
[윤희영의 News English] 한 억만장자의 하소연 (0) | 2015.11.05 |
[천자칼럼] 삼계탕 (0) | 2015.11.04 |
[취재파일] 문훈숙 단장이 소개하는 '발레 감상법' (0) | 2015.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