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11.23 강인선 논설위원)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단식과 말실수, 특유의 발음, 조깅, 칼국수가 떠오른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그의 인간적 면모가 늘 화제였다.
1993년 금융실명제 도입을 전격 발표할 때였다.
대통령이 TV 카메라 앞에서 담화문을 읽고 있는데 대변인이 사색이 돼 다가왔다.
케이블이 연결되지 않아 생중계되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다시 준비될 때까지 화를 참느라 YS는 의자 팔걸이를 부서뜨릴 정도로 꽉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분노를 폭발시키지는 않았다.
▶YS가 화를 터뜨릴 땐 정말 무서웠다.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YS가 화를 터뜨릴 땐 정말 무서웠다.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취임 초 대통령이 골프 금지령을 내렸는데도 홍인길 당시 총무수석 비서관이 몰래 골프를 친 일이 있었다.
이 골프 회동이 한 일간지 만평에 나와버렸다. 홍 수석은 한동안 대통령을 피해 다녔다.
일주일 만에 회의에 들어가서도 대통령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YS가 "보래이" 하면서 불러 세웠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서 있는데 YS가 탁자 위에 발을 척 올리더니 말했다. "별일 없제? 잘하래이…."
▶YS가 민자당 대표 시절 외교사절들이 참여하는 청와대 행사에 초대받았다.
YS의 '영원한 비서' 김기수는 이날 드레스코드가 '연미복'이라고 전했다.
막상 가보니 다들 정장 차림이었다. YS는 혼자 연미복을 입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사를 마쳤다.
상도동 집으로 가는 길 자동차가 한강대교를 건널 때 YS가 말했다.
"기수야, 니 한강에 뛰어내리래이."
김 실장은 YS가 가까운 사람에겐 어떻게 화를 내는지 잘 안다.
그는 지금까지 35년 넘게 YS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미식가이자 대식가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달리 YS는 음식에 큰 관심이 없었다.
▶미식가이자 대식가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달리 YS는 음식에 큰 관심이 없었다.
청와대 메뉴도 칼국수에 마른 멸치와 고추장을 곁들인 정도였다.
DJ도 청와대에서 칼국수를 대접받았다. 하지만 나오는 길에 곧장 아귀찜을 먹으러 갔다.
청와대에 밥 먹으러 갔던 사람들 사이에 "양이 적다" "맛이 없다" 말이 많았다.
YS는 출입기자 친척 중에 안동 칼국수를 잘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청와대 요리사를 보내 비법을 배 우게 했다.
▶YS는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며 조깅으로 몸 관리를 했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방한 땐 같이 조깅하다가 갑자기 전력질주해 클린턴보다 앞질러버렸다.
감출 수 없는 승부 근성이 작동했던 것이다.
그러나 YS는 그 무엇보다 정국에 대한 통찰력이 비범했다.
한 시대의 거인이 떠났다. 그가 '학실히'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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