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5-11-26
우리의 그런 정서는 몇 년 전 유행했던 광고카피에서도 드러난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일등만을 기억하니 좌우지간 일등을 하라는 독려(?)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승자 독식’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 세태는 2등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회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좌절시키고 절망하게 하는가를 새록새록 깨닫게 한다.
일등만이 살아남는 사회 구조로 인해 오늘날 세계 상위 85명의 재산이 지구촌 인구의 절반인 35억 명의 재산과 맞먹는다는 보고서 내용은 믿기지 않는 충격이다. 그렇다면 지구 절반에 이르는 가난한 사람들의 불만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최상위 계층 또한 재산을 지키기 위한 안간힘을 써야 할 테니 결코 편안하진 못할 터, ‘이 멈출 수 없는 레이스에서 과연 누가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되묻게 된다.
지난 며칠간 뉴스를 통하여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 다녀가는 숱한 조문객들을 보았지만 3김(金) 시대의 마지막 한 명으로 남은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모습이 나에게는 참 인상적이었다. 그의 여생이 2등이어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이콘 같아서다. 정치적 야망을 함께했던 세 사람을 대통령의 자리로 밀어 올리는 데에 한몫을 했지만 자신은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그래서 만년 2인자라고 불렸던 JP. 그러나 정치를 떠나 지극한 애처가로, 풍부한 예술적 소양과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여유로움으로 그는 전직 대통령들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2인자였다.
지금 창밖에선 아름답게 물든 나뭇잎들이 쉴 새 없이 바람에 떨어진다. 결국은 누구나 다 그렇게 떠나간다. 영원한 일등은 없다. 오늘만큼이라도 “2등이어도 괜찮아”, 그런 마음을 가져본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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