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12.01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 정상회의 참석 차 출국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을 TV로 보면서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통령은 배웅 나온 집권당 대표, 원내대표 등과 악수를 나누며 뭔가 잠시 대화를 나눴습니다. 손을 흔들어 보이며 탑승구를 빠져나가는 대통령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사흘 전만 해도 몸이 불편해 전직 대통령 영결식조차 참석하지 못했던 박 대통령입니다.
벌써 한 해가 끝자락에 걸렸습니다. 2015년 달력도 이제 한 장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올 한 해는 어땠습니까.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만족과 희열보다는 후회와 아쉬움이 아무래도 크지 않을까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공동체를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개인의 행복과 불행은 크든 작든 공동체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체의 부침(浮沈)에 따라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합니다. 올 한 해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란 공동체는 어땠습니까. 계속해서 추락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때로는 창피하게 지켜봤다는 게 저만의 소회일까요.
대한민국은 불과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자랑스러운 나라입니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됐습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클리셰’ 같은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이 이제 식상합니다. 왠지 닭살이 돋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입니까. 과연 우리는 지금 행복합니까.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노인빈곤율, 세계 최저의 출산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계층 간 격차는 갈수록 벌어져 희망의 사다리는 끊어진 지 오래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흙수저는 금수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대학을 나와도 변변한 일자리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헬조선’을 원망하는 청년들의 한숨이 나라를 뒤덮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외국 언론까지 한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얼마 전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낮과 밤처럼 남한과 북한을 확연하게 구별해주던 민주적 자유를 박 대통령이 퇴행시키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국제적 평판에 있어 가장 큰 위험은 경제적인 것보다도 역사를 다시 쓰고, 비판자들을 억압하는 박 대통령의 가혹한 조치들에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대한민국은 피도 눈물도 없는 나라가 됐습니다. 시위 도중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진 69세 노인이 17일째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도 정부는 사과는커녕 위로 한마디 없습니다. 아무리 불법폭력 시위에 연루됐다 하더라도 그 역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물대포는 폭력시위대를 해산하는 데 쓰라고 있는 것이지 비무장 상태의 노인을 조준직사(直射)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대포 사용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경찰의 책임을 물어야 마땅함에도 정부는 시위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저는 민주주의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지지했든 하지 않았든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입니다. 하지만 지금 박 대통령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반(反)정부, 반국가, 반체제 세력으로 낙인 찍어 배격하는 데 골몰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복면을 쓰고 폭력시위를 하는 이들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어떻게 그들을 이슬람국가(IS) 테러리스트에 비유할 수 있습니까. 지금 박 대통령이 하고 있는 것은 통합과 포용의 정치가 아니라 분열과 배제의 정치입니다.
대통령이 지시하면 국회는 무조건 따라야 합니까. 그렇다면 국민을 대신해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 국회는 존재이유가 없습니다. 대통령은 뒤에서 지시하고, 비판이나 하는 제3자가 아니라 국정의 최고 책임자입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세력을 끌어안고 설득해서 일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입니다. 이 나라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한시적으로 행사하는 공복(公僕)에 불과합니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왕이 아닙니다.
밖에 나가면 엄마는 늘 우아한 미소를 짓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집에만 돌아오면 웃음을 잃고 짜증스러운 얼굴로 심한 말을 합니다. 엄마의 따스한 손길과 자애로운 미소가 그립습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싶습니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그뿐입니까. 외국 언론까지 한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얼마 전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낮과 밤처럼 남한과 북한을 확연하게 구별해주던 민주적 자유를 박 대통령이 퇴행시키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국제적 평판에 있어 가장 큰 위험은 경제적인 것보다도 역사를 다시 쓰고, 비판자들을 억압하는 박 대통령의 가혹한 조치들에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대한민국은 피도 눈물도 없는 나라가 됐습니다. 시위 도중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진 69세 노인이 17일째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도 정부는 사과는커녕 위로 한마디 없습니다. 아무리 불법폭력 시위에 연루됐다 하더라도 그 역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물대포는 폭력시위대를 해산하는 데 쓰라고 있는 것이지 비무장 상태의 노인을 조준직사(直射)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대포 사용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경찰의 책임을 물어야 마땅함에도 정부는 시위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저는 민주주의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지지했든 하지 않았든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입니다. 하지만 지금 박 대통령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반(反)정부, 반국가, 반체제 세력으로 낙인 찍어 배격하는 데 골몰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복면을 쓰고 폭력시위를 하는 이들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어떻게 그들을 이슬람국가(IS) 테러리스트에 비유할 수 있습니까. 지금 박 대통령이 하고 있는 것은 통합과 포용의 정치가 아니라 분열과 배제의 정치입니다.
대통령이 지시하면 국회는 무조건 따라야 합니까. 그렇다면 국민을 대신해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 국회는 존재이유가 없습니다. 대통령은 뒤에서 지시하고, 비판이나 하는 제3자가 아니라 국정의 최고 책임자입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세력을 끌어안고 설득해서 일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입니다. 이 나라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한시적으로 행사하는 공복(公僕)에 불과합니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왕이 아닙니다.
밖에 나가면 엄마는 늘 우아한 미소를 짓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집에만 돌아오면 웃음을 잃고 짜증스러운 얼굴로 심한 말을 합니다. 엄마의 따스한 손길과 자애로운 미소가 그립습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싶습니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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