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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혹 떼려다 혹 붙인 미·중 균형외교

바람아님 2015. 10. 20. 09:15

[중앙일보] 입력 201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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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논설위원·순회특파원


지난 주말 백악관에서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공동 기자회견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와 언론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생생한 기회였다. 51분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미국 기자들의 질문은 미 국내 정치와 대외 현안에 집중됐다. 손님을 모셔놓고 ‘엉뚱한’ 질문만 해대는 미국 기자들이 무례하고 야속해 보였을지 몰라도 냉정하게 생각하면 틀린 데가 없다. 대통령에게 직접 질문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최대한 값지게 활용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부터 물어보는 게 이치에 맞다. 미 언론이 보기에 북한 핵이나 한·미 동맹은 미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이나 시리아 사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에 비해 우선순위가 떨어지거나 ‘재미없는’ 이슈라는 걸 우리 눈으로 확인한 셈이다.

 나란히 선 한국 정상의 ‘체면’을 생각해 미국 기자들의 질문을 적당히 끊고 한반도 문제로 질문을 유도할 법도 하지만 오바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떤 질문에도 성의껏 대답했다. 익히 보아 온 장면이기 때문에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언론을 대하는 미 최고지도자의 자세가 부러울 뿐이다.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발언 전문과 동영상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백악관 사이트에 올린 것도 부럽기는 마찬가지다. 그 차이는 지금 당장 청와대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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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로 청와대는 한국의 ‘중국 경사(傾斜)’ 가능성에 대한 미국 내 우려를 불식시키고 굳건한 한·미 동맹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기자회견에서 나온 오바마의 발언으로 빛이 바랬다. 오바마는 “한·미 관계에는 어떤 균열도 없다”면서 “한국이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과도 좋은 관계를 맺는 것 사이에 모순은 없다”고 말했다. ‘아쉽게도(?)’ 오바마는 거기서 굳이 한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박 대통령에게 얘기했듯이”라는 말로 정상회담 때 이미 언급했음을 암시하면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딱 한 가지는 중국이 국제 규범과 규칙을 지키지 않을 때는 한국도 우리처럼 그에 대해 목소리를 내주기 바란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확립된 국제규범과 규칙으로부터 한국도 혜택을 보고 있지 않느냐는 설명도 덧붙였다. 요컨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립된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중국이 도전할 경우 한국도 분명한 반대 목소리를 내달라는 요구다.

 남중국해나 동중국해에서 중국이 국제법을 무시하고 분란을 일으키거나 미국이 구축한 국제 정치·경제의 틀을 흔들려고 할 경우 확실하게 미국 편을 드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질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온 말이긴 하지만 한국을 일본처럼 확실한 미국 편이라고 생각했다면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과 잘 지내는 것은 좋지만 선을 넘진 말라는 경고로 들린다.

 청와대는 북한 문제에 대한 별도의 공동성명을 통해 북핵 문제를 ‘최고의 시급성’과 ‘확고한 의지’를 갖고 다루기로 한 점도 성과로 꼽고 있다. 미국이 그동안 견지해 온 ‘전략적 인내’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서기로 한 것 같은 뉘앙스다. 사실이라면 큰 뉴스다. 오바마 행정부 대북정책 노선의 ‘유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내 언론은 이 점을 부각시켜 크게 보도했지만 미국 언론은 완전히 무시했다. 북한이 먼저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진정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대전제는 전혀 달라진 게 없기 때문에 미국의 노선 변화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은 이번 방미에서 한국은 미국이 추진하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핵심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재균형 정책의 목적이 중국 견제에 있다는 건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결국 미국·일본과 손잡고 대중 견제에 동참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중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한 입으로 두말한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게다가 미·중이 전략적으로 충돌할 때 확실히 미국 편을 들어달라는 주문까지 받았으니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다. 화려한 의전과 외교적 수사를 앞세워 성공적 방미 외교라고 자찬하기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청구서 액수가 너무 크다.

 외교는 말과 글로 하는 싸움이다. 말로 협상을 하고, 협상 결과는 글로 남는다. 역사에 남는 것은 글이지만 글에 담기지 않은 말 한마디가 때로는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정상 외교의 결과로 나온 문서는 물론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상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오바마의 말로 보건대 미·중 사이에 낀 한국 균형외교의 딜레마는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인 것 같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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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박 대통령이 최고의 예우 받았다지만 정작 미 언론은…

[중앙일보] 입력 2015.10.18 


16일(현지시간) 오후 2시 9분 백악관 이스트룸. 정상회담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각각 회담 결과를 설명한 뒤 양국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첫 질문은 미 CNN 기자. "오바마 대통령께 묻겠다. 얼마 전 미 민주당 대선후보 TV토론을 본 느낌이 어땠느냐. 또 하나. 조 바이든 부통령이 출마할 수 있을 것 같냐. 추가로 묻겠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폭력 사태 공방이 해결 국면으로 향하고 있다고 존 케리 국무장관이 이야기했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국 관련 질문은 없었다. 순간 한국 측 기자석과 수행원석에선 조그만 웅성거림이 나왔다.

미국 측 두 번째이자 마지막 질문자도 마찬가지였다. "첫째, 당신(오바마) 정부는 이란이 미사일 실험으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다고 명백히 말했는데 이란 정부에 대해 제재하는 데 찬성하느냐. 둘째, 시리아에 대한 미국과 러시아의 이해가 근접했다고 볼 수 있는가. 셋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당신의 정부가 이뤄낸 무역협정(TPP)에 반대한 데 대해 실망했느냐."

넷째도, 다섯째도 한국 질문은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에 장황하게 답을 하느라 박 대통령이 자신에게 던져진 유일한 질문("중국의 전승절에 가 러시아·중국 지도자와 함께 함으로써 미국에 무슨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건 거냐")을 잊고 "하도 길게 말씀하셔서 질문을 잊어버렸다"고 하는 장면도 나왔다(난 박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이런 말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철저히 자국의 관심사에 집중하는 미국의 언론 특성을 감안하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 때와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때의 공동회견에 비하면 이번에 그 정도가 더 심했다.

회견이 끝난 뒤에 미 언론에서도 한미 정상회담 소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17일 오후 정상회견 화면이 TV에 비춰 반가운 마음에 음량을 크게 했지만 바이든 부통령 출마 여부에 대한 오바마의 발언이 짤막하게 소개됐을 뿐이었다. 워싱턴포스트도 국제면 구석에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면서 제목은 오바마의 이란 관련 발언을 달았다. 이는 좋게 말하면 미 언론의 입장에서 보면 한·미 관계가 특별한 현안 없이 원만하기 때문이고, 나쁘게 말하면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쪽인지는 단언하기 힘들다.

이와 대조적인 게 한국 언론이다. 이번 방미 기간 중 "펜타곤(미 국방부) 의장대 행사를 16분이나 한 건 파격적 최고의 예우" "숙소인 블레어 하우스에 처음으로 한국 대통령 사진 액자가 3개가 배치됐다" "부통령 관저로 '아시아 정상을 오찬 초청'한 건 처음" "펜타곤이 로프라인 미팅 형식의 장병 격려 행사를 타국 정상에게 허용한 건 상당히 이례적"이란 보도가 넘쳐났다.

의전을 잘 받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게 성과의 근거, 보도의 중심이 돼선 안 된다. 원래 외교에선 손님에게 줄 선물이 없을 때 의전을 더욱 극진히 하는 법이다. 이번 방미 성과만 봐도 그렇다. 펜타곤의 성대한 의전을 '이용'해 KF-X(전투기) 핵심기술 이전 건을 해결하려다 창피만 당했다. 한국에선 오바마의 환대에 미국 내 '한국의 중국 경사론'이 불식됐다고 한 목소리지만 "중국이 국제규범과 법 준수를 어기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미국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중국이 법을 무시하고 원하는 대로 한다면 한국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오바마의 공동회견 '주문'에 방점을 두는 미국 내 반응도 상당수란 점을 자각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헌신적 외교 노력에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이번 방미 기간 중 행사들을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뭔가 우리 외교의 명확한 지향점과 그에 따른 논리적 메시지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강연, 백악관 공동회견을 듣고 돌아서는 외국 기자들의 반응에서 그걸 느낀다. 이번 방미가 '영원한 친구' '한·미 동맹'의 구호와 원칙만으로 대미외교가 잘 굴러가는 시절은 지났음을 절감한 계기가 됐으면 한다. 한국 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