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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봐도 무서울 정도" 강형구 화백, 베이징전시회 보니

바람아님 2015. 12. 17. 21:48
[중앙일보] 입력 2015.12.1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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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구 화백(60)은 사람의 얼굴을 그린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국제 미술계에 널리 알려진 그는 세밀화를 그리듯 머리카락 한 올, 주름살 한 가닥까지 놓치지 않고 그린다. 대형 캔버스에 그려진 작품은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그를 초상화가라 부르지 않는다. 강화백은 “기법은 극사실적이지만 내 그림은 작가적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허구의 세계”라며 “소설가와 마찬가지로 나도 허구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눈다”고 말했다. 가령 젊은 날 숨진 배우 메릴린 먼로가 늙어 60대 할머니가 된 모습을 생전에 본 것처럼 그려내는 식이다.

강 화백이 이번엔 ‘중국’이란 주제에 도전했다. 그가 베이징에 한달 반 체류하며 그린 신작 중엔 베이징원인(猿人)과 관우(關羽), 덩샤오핑(鄧小平)이 포함돼 있다. 중국의 선사시대와 고대, 현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를 포함한 대형 작품 30점으로 베이징의 랜드마크 팡차오띠(芳草地)전람관에서 지난 5일부터 내년 2월까지 개인전 ‘영혼’을 열고 있다. 같은 시기 상하이 현대미술관에서도 강 화백의 대표작 50점으로 개인전을 연다. 한국 작가의 중국 진출이 이따금 시도되지만 중국 미술의 중심지 베이징·상하이에서 동시 개인전을 여는 건 처음이다. 강 화백은 현지에 체류하며 중국을 주제로 작품을 만든 뒤 이를 곧바로 전시하는 ‘라이브’ 방식을 택했다.

강 화백은 팡차오띠전람관 2층 회랑에 내걸린 높이 6m의 관우 그림 '관공(關公)'을 완성함으로써 “필생의 숙제를 푼 느낌”이라고 말했다. “삼국지를 탐독하던 시절부터 관운장은 마음 속 영웅이었습니다. 진로를 결정할 무렵엔 육군사관학교냐 미대로 가느냐를 놓고 고민했죠." 그는 관우를 그리기 위해 고미술품 상가에 전시된 관우 조각상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하지만 그가 창조한 관우 캐릭터는 사각 턱과 치켜 올라간 눈매가 유난히 강조돼 기존 관우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는 "정의와 충절의 화신 관우의 강직한 모습을 통해 권모술수에 능한 현대인에 경고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밖에 베이징 전시회에는 마하트마 간디, 윈스턴 처칠 등 역사적 인물에서 메릴린 먼로 연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전시관 측에 따르면 중국 관객은 강 화백의 자화상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다. 붉은 빛 톤에 안광(眼光)이 화폭 밖으로 튀어나오는 듯한 강렬한 시선을 묘사한 기법이 중국 화단에서는 좀처럼 보지 못하던 화풍이라고 한다. 강 화백이 “내가 봐도 무서울 정도”라고 표현한 그림이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