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주위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지만 난 끝까지 미소 지으려 노력했다. 그게 피아트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으니까.
내 이름은 난 티파라뜨. 태국 차층사오주(Chachoengsao)에 산다. 피아트는 남자친구다. 아니 남자친구였다. 지금은 옆에 없으니까. 물론 우리는 영원히 함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결혼을 앞둔 사이였다. 그러나 피아트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장밋빛 미래를 노래했던 그는 침대에 누웠다. 작은 캐릭터가 그려진 분홍색 이불이 마지막 피아트의 가는 길을 따뜻하게 장식하리.
피아트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 우리는 결혼했다. 함께 나란히 서지 못했지만 그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줬다. 고요한 장례식. 사람들은 훌쩍였지만 난 조용히 눈을 감고, 그와 함께했던 지난 시간을 돌이켰다.
피아트의 심장마비는 정말 충격이었다. 어떠한 조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아있을 적 그는 정말 건강했다. 어느날 갑자기 나만 세상에 남겨두고 떠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우리는 멋진 결혼을 꿈꿨어요. 그날 저는 손을 꼭 잡은 피아트를 봤어요. 그는 평화 속에 잠들었죠. 피아트, 당신을 사랑합니다. 비록 당신이 살아있지는 않지만, 우리의 바라던 꿈이 이뤄졌다는 것을 알길 바랄게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한 장례식 사진에 덧붙인 그를 향한 나의 인사다.
죽은 자와 산 자의 결혼식은 남들이 보기에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왜냐면 피아트는 내가 온 마음을 다해서 사랑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음 생에 그와 내가 다시 만날 것을 굳게 믿고 있다.
결혼식 날 너무나도 화려했던 피아트. 그도 우리의 결혼식이 마음에 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결혼은 공식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한다. 아직 태국 법은 죽은 자와 산 자의 혼인을 정식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 윗글은 영국 데일리메일 기사를 바탕으로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되었습니다. 지난 4일 페이스북에 올라온 티파라뜨의 게시물은 현재까지 ‘좋아요’ 5만여회, ‘공유’ 1만8000여회 등을 통해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
김동환 기자kimcharr@segye.com
사진=영국 데일리메일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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