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청춘들이 아프다. 대나무보다 푸른 청춘들이다. 혹한의 들판에서 처절하게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기성세대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매서운 한파다. 학점 따랴, 토익 점수나 인턴 경험의 스펙을 쌓으랴 숨돌릴 틈조차 없다. 그러나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악이다. 그렇다고 어깨만 늘어뜨린 채 있을 순 없다. 대나무는 청춘들에게 얘기한다. 지금은 얼음비에 고개를 숙였지만 능력을 마음껏 뽐낼 날을 기다리라고.
박희준 논설위원 |
청춘들이 세상을 원망하는 목소리가 귓전에 들린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들을 ‘노오력’으로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고 한탄한다. ‘헬조선’을 외치며 한국을 떠나 호주 등으로 향하는 청춘들도 있다고 한다. 원망과 체념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분노하라. 그리고 불평등한 세상을 바꿔라”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의 독려처럼 분노해야 한다. 분노에 그칠 게 아니라 사과나무를 넘어뜨릴 수 있는 푸른 대나무임을 깨달아야 한다.
난방을 해도 거실이 추워 벽난로를 피워야 할 때가 있었다. 장작에 불을 붙이는 게 쉽지가 않다. 아주 작은 잔가지를 불쏘시개용으로 썼다. 신문지에 불을 붙여 성냥개비만 한 잔가지를 태우고 뒤뜰에 모아놓은 나뭇가지들을 집어넣는다. 그 위에 장작을 올리면 얼마 안 가 그럴싸한 벽난로 풍경이 만들어진다. 장작에 불이 꺼질 성싶으면 나뭇가지를 넣어 불꽃을 살려낸다. 나뭇가지는 장작과 함께 탈 때 불꽃이 더욱 오래 간다.
세상을 바꾸려면 청춘들 하나하나가 타올라야 한다. 기성세대를 탓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기성세대는 명예퇴직이니, 임금피크제니 하며 자신들 앞가림을 하기에도 바쁘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더 이상 성공을 이뤄낼 수 없는 사회라면 함께 나서 한목소리로 외쳐야 한다. 한번 바꿔보자고. ‘붕괴를 원한다’, ‘이번 생은 망했다’와 같은 저주의 목소리여서는 안 된다. 저주의 불꽃을 태우다 보면 파국만이 기다릴 뿐이다.
가게에서 파는 장작은 잘 말라 있어 한두 시간도 버티지 못한다. 장작값 부담은 만만치 않다. 집 옆에 쓰러져 있는 사과나무가 떠올랐다. 인부를 불러 토막내 뒀으나 생나무라 탈 수 있을지 몰랐다. 장작불이 활활 타오를 때 통나무를 밀어 넣었다. 얼어 있던 통나무는 물기를 흘리고 수증기를 냈다. 결국 통나무도 겉부터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타면서 스스로 내부를 말리고 다시 타들어가며 밤늦도록 거실을 훈훈하게 덥혔다.
청춘들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에 대한 무관심을 경계해야 한다. 혁명은 선거를 통해 이룰 수 있다. 청년층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비정규직과 알바생들의 눈물을 닦아줄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40%에도 못 미치는 투표율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다. 투표 열기가 50%, 60%로 뜨거워지면 우리 정치가 스스로 타오를 것이 분명하다. 대나무는 사과나무를 쓰러뜨렸고, 작은 불쏘시개는 통나무를 태웠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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