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時事·常識

[만물상] 은퇴 후 出家

바람아님 2016. 1. 17. 00:14

조선일보 : 2016.01.15 03:00

어느 절에서 행자들 사이에 '출가(出家)'와 '가출(家出)'의 차이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출가는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집을 나오는 것이고, 가출은 집을 나오는 것 자체가 목적입니다." "출가는 허락받고 나온 것이고, 가출은 허락 없이 나온 것입니다." "그럼 부처님은 허락받고 나오셨나요?" 연세 지긋한 스님이 점잖게 한 말씀 했다. "응! 그거 간단해. 가출한 사람은 입산할 때 국립공원 입장료 내야 하고, 출가한 사람은 그냥 들어와도 돼." 해인사 승가대학장 원철 스님이 쓴 책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에 나오는 얘기다.


▶불가(佛家)에서 음력 2월 8일은 특별한 날이다. 부처님이 왕자의 영화(榮華)와 속세의 인연을 모두 버리고 깨달음을 찾아나선 날이다. 집착과 속박의 성(城)을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부처의 출가를 '넘을' 유(踰)자 써서 유성(踰城)이라고도 한다.


만물상 일러스트

▶소설가 최인호도 때론 자기의 성을 넘고 싶었던 모양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어느 날 수덕사에 있는 스님의 승복을 빌려 입고 밀짚모자 쓰고 욕망과 환락이 넘치는 강남 중심가를 걸었다. 유명 소설가에 얼굴도 잘 알려진 그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내가 다르게 느껴졌다. 방금 전의 내가 아니었다. 걸음도 반듯해지고 진짜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환희가 흘러넘쳤다.'


▶보통 사람도 속세의 굴레를 벗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쉽지 않다. 우선 어른거리는 것이 너무 많다. 출가의 내적 동기, 발심(發心)은 더 큰 고개다. 성철 스님은 결혼생활 중 "개에게는 불성(佛性)이 없다"는 화두를 들고 절에 들어갔다. 42일 정진 끝에 동정일여(動靜一如) 경지에 이르렀다. 이는 성철 스님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절에 들어가도 삼천 배에 면벽 수도 일주일을 하고 엄격한 행자 생활을 거치는 사이 큰맘 먹었던 '출가'가 '가출'이 돼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도 어제 신문에 실린 조계종 소식에 눈이 간다는 사람이 많다. 조계종은 "전문 분야에서 활동하다 퇴직한 분들을 맞기 위한 출가 제도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동안은 출가자 상한 연령이 쉰이어서 나이 든 은퇴자는 출가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은퇴 후 출가'에 관심 갖게 되는 것은 중년 이후 삶이 팍팍하고 번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한편 이런저런 일 다 겪은 이들이 수도(修道)를 하다 보면 같은 부처님 가르침이라도 깨달음이 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