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결의안에 '동참'하며 "사드 배치 철회하라" 대미 압박
미국 심장부서 '평화협정' 노골적 띄우기…대화국면 전환 시도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 26일(현지시간)로 마무리된 중국 왕이 외교부장의 '워싱턴 3박4일'은 중국 대미외교의 '무서운 면'을 보여준 계기였다.
대북 제재 수위를 놓고 미국과의 직접 담판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민감한 한반도 현안 논의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보기 위한 외교전을 전개한 것이다.
일단 왕 부장의 이번 방미는 미국이 주도하는 초고강도의 대북 제재에 중국이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이 주목된다.
북한의 반발과 한반도 정세의 불안을 의식해 대북 제재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온 중국은 이번에 공개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협조적인 자세로 나왔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설명이다.
그만큼 북한의 거듭된 도발행위를 규탄하는 국제사회의 초강경 기류 속에서 중국으로서도 운신의 폭이 넓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한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변국들의 외교적 압박도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제재대상의 내용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미국 측의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하는 전향적 태도를 보여줬다. 한 외교소식통은 "과거 네 차례에 걸쳤던 안보리 결의안 논의 때보다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러나 주목할 대목은 중국이 대북 제재에 협조하는 대가로 민감한 외교현안을 놓고 마치 '외교적 거래'라도 하듯이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한 '압박외교'를 가한 것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가 그 대표적 사례이다.
특히 왕 부장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수전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과의 면담에서 사드 배치를 철회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어 왕 부장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세미나에 나와 "사드는 운용 범위가 한반도를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중국의 안보이익에 위협이 된다"며 사드 배치 철회를 거듭 주장했다.
일단 미국으로서는 왕 부장의 방미와 무관하게 사드 배치에 대한 한·미 간 협의를 내주 중 예정대로 시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방미를 계기로 미묘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그동안 가장 강력하게 사드 배치의 필요성을 주장해온 해리 해리스 미국 태평양사령관은 이날 펜타곤 정례브리핑에서 "사드 협의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드를 배치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협의가 어떻게 될지를 지켜봐야 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한·미 간 협의에 따라서는 사드 배치를 하지 않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이는 사드 배치가 한·미동맹의 결정 사항으로 중국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던 것과는 사뭇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왕 부장 방미의 또다른 관전포인트는 평화협정 논의를 드러내놓고 제안한 대목이다. 왕 부장은 이날 작심한 듯 외교장관 회담과 공개 세미나를 통해 비핵화 협상과 평화협정 논의의 '병행론'을 강력히 주창했다.
특히 왕 부장은 이날 세미나에서 "평화협정이 없이는 비핵화를 달성할 수 없다"고까지 언급했다. 비핵화를 최우선시하는 공통의 스탠스를 취해온 한국과 미국에는 '폭탄성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한국과 미국은 그동안 비핵화 협상이 일정한 진전을 거둔 이후에 평화협정 논의에 응할 수 있다는 입장 하에 북한이 지난해 말 제안한 평화협정 논의를 일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이 이처럼 공개로 대북 제재에 협력하는 자세를 보이면서 평화협정을 논의하자고 나오면서 상황이 미묘해지게 됐다.
한국과 미국으로서는 '비핵화 우선' 기조를 유지하며 평화협정 논의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의 이 같은 대화론이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하기 위한 '5자간 제재공조'를 흔들 가능성이 있다.
특히 중국의 이 같은 행보는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긴장이 고조된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대북 제재에 적극 협조한 데 대해 북한이 이를 비난하고 나설 가능성을 의식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그보다는 국면전환을 겨냥한 포석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따라서 앞으로 주변국 외교를 통해 중국은 이 같은 '병행론'에 적극적으로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
왕 부장의 '3박4일' 방미 이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국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향후 정세 운용의 주요한 관전포인트로 부상하게 됐다.
한국으로서는 대북 제재 논의와 별개로 '사드 배치'와 비핵화-평화협정 '병행론'에 대해 한·미 공조의 틀 내에서 정교한 대응을 해야할 필요성이 커졌다.
주목할 변수는 미국이 중국의 협조 여부에 따라 한반도 현안 대응에 대해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는 점이다. 동북아 역학 구도 변화를 주도하는 'G2'(주요2개국)의 관점에서 한반도 문제를 바라볼 경우 외교적 대응이 복잡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왕 부장의 방미를 계기로 중국이 과거와는 달리 더욱 적극적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공동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적극적으로 받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CSIS 세미나를 통해 중국의 입장을 '전략적으로' 홍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왕 부장과 라이스 보좌관의 회동 도중 깜짝 방문한 것은 미국의 대외관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과 전략적 관리의 필요성을 얼마나 크게 느끼고 있는가를 시사해주고 있다.
中우다웨이 28일 방한..한중 '안보리 결의 이후' 논의(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