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오메! 요 실한 개불 좀 보소, 까무라치것네"

바람아님 2016. 3. 18. 00:15
[중앙일보] 입력 2016.03.17 10:31

강진은 예로부터 어족자원이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탐진강을 비롯한 아홉 개의 담수천이 강진만으로 흘러든다. 물고기기 많다. 그래서 강진의 8경 중에 ‘구강어화(九江魚火)’가 있다. ‘아홉개의 강에 떠 있는 고기잡이 불빛’이라는 뜻이다.

또 갯벌에는 진흙과 모래와 자갈이 적당히 섞여 있다. 어패류가 서식하는 데 최적의 환경이다. 한때 “강진 원님 대합 자랑한다”는 말이 있었다. 환경이 많이 바뀌었지만 지금도 강진은 바지락, 꼬막, 김, 토하, 매생이 산지로 유명하다.

그런데 ‘아는 사람만 아는’ 강진 특산물이 있다. 강진 사초리 개불이다. 맛이 달기로 이름났지만 2년에 한 번씩만 맛볼 수 있다. 그것도 강진에 가야 한다. 워낙 소량으로 생산되고 ‘사초리 개불축제(3월 12~13일)’ 때 전량이 소비되기 때문이다.
 
아들·딸도 개불 잡으러 서울서 고향 왔당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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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주민들의 개불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 2년에 딱 이틀, 음력 2월 사리 때만 개불을 잡는다. 개불은 여름에는 갯벌 1m 아래에 틀어박혀 있다가 수온이 차가워지는 겨울에 위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2년에 한 번 있는 개불 잡는 날이 되면 사초리 마을은 축제 분위기가 된다. 추운 날씨에 고생은 하지만 한 이틀 애쓰면 가구당 많게는 200만~300만원을 벌 수 있다. 개불 한 마리에 1500~2000원 꼴이다.

“개불잡이는 어촌계 한 가구당 2명씩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르신 혼자 사는 집은 외지에 있는 아들, 딸이 개불을 잡으러 고향에 옵니다.” 사초리 차영옥(61) 이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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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불잡이에 나선 어민들은 물때에 맞춰 배를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무인도 ‘복섬’으로 향한다.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며 채비를 한다. 가슴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기다란 고무장갑을 낀다. 고무장갑과 팔의 연결부분은 테이프로 이중삼중으로 감아 붙인다. 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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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복을 준비한 어민들도 있다. 물이 빠지면 어민들은 바다로 뛰어든다. 개불은 2인 1조로 잡는다. 주로 힘을 쓰는 남자는 길이 40~50㎝의 쇠스랑으로 갯벌을 퍼올리고, 아낙들은 채같이 생긴 대바구니로 이를 받아서 개불을 줍는다. 개불이 진흙 속에 있는 경우도 있지만 쇠스랑에 두세 마리씩 걸려서 나오기도 한다. 흙탕물이기 때문에 바닥이 보이지가 않는다. 허리까지 차는 물속에서 감에 의존해 갯벌을 파야 한다.


입안에 바다내음, 쫄깃한 식감과 단맛 못 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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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불은 개의 ‘거시기’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개불잡이 현장은 늘 시끌벅적하고 훈훈하다. 전라도 말씨 특유의 질펀한 농담과 악의 없는 욕지거리들이 오간다. 곳곳에서 깔깔대고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어쩌다 크고 통통한 개불이 잡히면 “워매, 이 실한 것 좀 보소. 까무라치것네”, “아따! 아짐 오래 굶었소. 그렇게 꽉 쥐면 터져분당께” 하며 농을 주고 받는다. 살을 에는 바닷바람과 추위 속에서 작업을 하니 그렇게 해서라도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마을사람 서로 간의 배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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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불은 글리신과 알라닌 성분이 많아 단맛이 난다. 쫄깃쫄깃한 식감도 좋다.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해 피로회복과 피부미용에 효과가 있다. ‘오메가3’ 성분인 DHA와 EPA가 들어있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준다고 알려져 있다. 개불이 술안주로 인기를 끄는 이유다. 일식집에 가면 횟감보다 한 단계 아래 음식으로 취급받지만 사초 개불을 먹어 본 사람은 생각이 달라진다. 이 밖에 개불에는 철분이 많고 혈전을 용해해 주는 물질이 있어 빈혈, 고혈압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저 칼로리 식품이라 다어어트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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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개불은 주로 회로 먹는다. 양념을 입히고 석쇠에 호일을 씌워 구워 먹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잡아서 날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가슴장화’를 신고 물에 들어갔다. 인심 좋아 보이는 어민 한 분이 “고생한다”며 잡은 개불의 꼬리를 이빨로 물어뜯은 다음 내장을 훑어내고 바닷물에 씻은 다음 먹어보라고 건네준다. 입안에 감도는 바다 내음과 함께 쫄깃한 식감과 개불 특유의 단맛이 입 안에서 소용돌이친다. “강진 원님 대합 자랑한다”는 “강진군수 개불 자랑한다”는 말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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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 기자 click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