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은 전북 진안군과 장수군의 경계인 팔공산(1151m)에서 발원해 지리산 남쪽 자락을 타고 흘러내려 광양만에서 남해 바다에 몸을 푸는 물줄기다. 환경부에 따르면 섬진강은 길이가 212㎞에 달하고 전북 남원·정읍·임실·순창·진안·장수, 전남 곡성·광양·구례, 경남 하동·남해 등 3개 도(道) 12개 시·군을 지난다.
이 긴 물길은 하동 땅에 이르러 비로소 강다운 모습을 갖춘다. 얕은 개천이 구례와 하동 경계 부근의 남도대교를 지나면서 폭도 넓어지고 수심도 깊어진다. 여기에서부터 강변도 자갈밭에서 모래사장으로 바뀐다. 섬진강은 강변의 은모래 때문에 더 푸근하게 다가온다. 은모래 펼쳐진 강변이 본래 우리네 강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한강도, 금강도 너른 모래밭을 품고 있었지만 인간이 강을 정비하고 댐을 지으면서 은모래 반짝이는 강변의 풍광은 사라지고 말았다. 섬진강과 바투 붙은 하동군 신기리에서 나고 자랐다는 조상재(52)씨의 말이다.
“우리 또래의 삶은 전부 섬진강에서 이루어졌어요. 어렸을 적에 할머니는 강에서 재첩을 캐 산으로 올라가 보리 같은 걸로 바꿔와서 나를 먹였어요. 나는 친구들이랑 강에서 참게랑 은어를 잡으면서 온종일 놀았고요. 그때는 강바닥에 온통 재첩이 깔려 있어 발이 아플 정도였어요.”섬진강에 내려온 봄을 찾아 사흘을 다녔다. 섬진강은 무던하게 상춘객을 품었다. 섬진강에는 봄을 만끽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있었다. 구례 산동마을의 산수유와 광양 매화마을의 매화가 찬바람을 이기고 막 봉우리를 터뜨렸다. 작고 여린 것이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모습이 여간 기특한 것이 아니었다. 하동 악양의 너른 들판은 보리가 제법 자라 푸릇푸릇했고, 섬진강 하류 주변의 식당에서는 막 제철을 맞은 참게와 벚굴을 내놨다.
아직 더 남았다. 강물이 더 따뜻해지면 강을 따라 황어가 올라올 터이고, 황어가 헤엄칠 즈음이면 강변의 벚꽃도 흐드러질 것이다. 벚꽃이 지면 섬진강을 내려다보고 들어선 하동의 산자락 차밭이 부산해지고, 붉은 철쭉이 기슭을 붉게 물들일 터이다. 그렇게 섬진강의 찬란한 계절도 지나갈 것이다. 벌써 아쉽다.
글=홍지연 기자 jhong@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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