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직 사퇴는 정당이나 정치인이 결의 다짐, 결백 호소용으로 동원하는 단골 카드다. 대부분 공수표로 끝난다. 2005년 3월 행정도시특별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에 항의해 의원직 사퇴를 끝내 실천한 한나라당 박세일 의원이 눈에 띌 정도다. 그와 동조했던 박찬숙·김애실 의원은 말을 주워담았다.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 되겠다.” 4·13 총선에서 후보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오죽 불신받으면 그럴까. 선거 공약은 공약(空約)으로 여겨진 지 오래다. “약속을 잘하는 사람은 잊어버리기도 잘한다.” T 플러의 명언은 정치인에게 딱 맞다. 약속·신뢰 정치는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비결로 꼽힌다. 취임 후 평가는 다르지만.
총선 후 야권의 ‘대권시계’가 빨라졌다.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전 상임고문은 그제 측근·지지자와 식사하며 “저녁이 있는 삶”을 외쳤다. 2012년 대선후보 경선 때 썼던 구호다. 지난 18일엔 광주를 찾아 “새판을 짜는 데 앞장서겠다”고 했다.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는 16∼18일 호남 방문부터 어제 노무현 전 대통령 7주기 추도식 참석까지 연일 강행군이다. 20일엔 대권 도전을 기정사실화했다. “(대선을 대비해) 불펜투수로서 몸을 풀겠다”는 안희정 충남지사 발언에 “좋은 후배와 경쟁할 수 있다면 영광”이라고 했다.
손 전 고문은 2014년 7·30 수원병 보선에 낙선한 다음날 정계를 은퇴하고 전남 강진군 토담집에서 칩거해왔다. 그런 그가 지금 사실상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복귀 선언은커녕 어떤 설명도 없었다. “정치는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 그가 2년 전 했던 정계은퇴의 변이다.
문 전 대표는 지난달 8일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 미련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도 자신의 발언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17일 광주·전남지역 낙선자들과 만나 호남 참패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으로 정계은퇴 약속을 갈음한 건가. 두 사람이 지도자를 꿈꾼다면 책임 있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한다. “약속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 차라리 나폴레옹 말을 들었어야 했다.
허범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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