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6.06 최재경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전국시대 진나라 부국강병 이루려 가벼운 범죄도 혹독하게 처벌
결국 민심 이반돼 반란으로 멸망 "형벌로 다스리면 부끄러움 몰라…
덕과 예로 부끄러움 알게 해야 犯法 준다"는 공자 말씀 새겨야
지난 4월 어느 분에게서 흥미로운 여행담을 들었다.
이름조차 생소한 필리핀 다바오(Davao)에 초청받아 갔는데 하필 강력범죄로 유명한 민다나오 섬에 있는
도시여서 도착하자마자 '전문 킬러에 의한 청부 살해 사건', '납치돼 거액의 몸값을 요구받고 장기간
억류되는 사례 발생'. '납치당하지 않도록 유의' 등등 살벌한 경고 문자가 쇄도해서 질겁했다고 한다.
놀라서 귀국하려 하자 초청자가 "민다나오 섬은 위험하지만 다바오는 두테르테(Rodrigo Duterte) 시장이
범죄자를 무자비하게 진압해서 밤길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다"고 만류해서 잘 쉬다가 돌아왔다고 했다.
한 달 뒤 다바오 시장이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범죄자 1700명을 즉결 처형하는 등 초법적 강경조치로 범죄도시를 안전한 곳으로 바꾸었고,
그 성과를 배경으로 대선에 출마해서 '마약상, 깡패 등 범죄자 10만 명을 처형해 시체를 마닐라 만에 던지겠다'며
취임 6개월 내 범죄 척결을 공약했는데 만연한 무질서와 범죄에 지친 필리핀 국민의 마음을 잡은 것이다.
과연 두테르테 당선자가 인구 1억이 넘는 필리핀의 치안을 확보하고 부패를 막아 다바오에서의 성공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
오는 9월 28일부터 소위 김영란법이 시행된다.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다양한 규제와 엄정한 처벌을 도입하는 법률이다. 법 시행을 앞두고 부패 척결의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지나친 규제로 인한 경기 위축이나 농수·축산업 피해 우려 등 반대 의견도 만만찮은 모양이다.
부패 척결은 시급한 과제다.
부패 척결은 시급한 과제다.
법으로 치밀하게 규제해서 청렴한 공직 풍토가 조성된다면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하지만 법률이 만능 해결책은 아니다.
수십 년간 뇌물죄를 가중 처벌하는 특가법 개정이 계속됐고, 법률가도 헷갈릴 정도로 강력범죄와 성폭력범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 재개정이 있었지만 효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지나친 규제와 집행이 오히려 법률규정을 사문화하거나 탈법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었다.
전국시대 초기 진(秦)의 상앙(商�)은 승상이 되자 범죄를 줄이고 사회질서를 확보하려면 엄한 형벌보다 좋은 것이 없다면서
전국시대 초기 진(秦)의 상앙(商�)은 승상이 되자 범죄를 줄이고 사회질서를 확보하려면 엄한 형벌보다 좋은 것이 없다면서
중벌 위주의 개혁 정책을 폈다. 길에 재를 버려도 이마에 죄명을 새기는 경(�)형에 처할 정도로 가벼운 범죄도 엄하게
처벌했다. 연좌제를 도입해서 한 사람에게 죄가 있으면 삼족을 벌했다.
엄격한 법 집행으로 부국강병을 이뤘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법가(法家) 특유의 지나친 중형주의 때문에 민심이 이반되고
엄격한 법 집행으로 부국강병을 이뤘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법가(法家) 특유의 지나친 중형주의 때문에 민심이 이반되고
반란이 일어나 2대 만에 진이 망했다는 부정적 시각이 많다.
사기(史記) 중 '혹리열전(酷吏列傳)'을 보면 10여 명 사법관의 행적이 적혀 있다.
이들이 범죄자를 단속한 수법을 보면 두테르테도 울고 갈 정도다.
사마천은 이들의 가혹한 법집행을 '불은 그대로 두고 끓는 물만 식히려는(救火揚沸·구화양비)' 일시적 대증요법에
사마천은 이들의 가혹한 법집행을 '불은 그대로 두고 끓는 물만 식히려는(救火揚沸·구화양비)' 일시적 대증요법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가혹하게 법을 집행했지만 범죄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도적이 창궐하고 민생만 피폐해졌다는 것이다.
뜨거움을 더하는 불은 그대로 둔 채 물이 더 끓지 않게 하려면 무리한 수단을 쓸 수밖에 없지만 정작 제대로 된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현실이 심각하다면 때로는 두테르테나 혹리들과 같은 충격·대증요법도 필요하다.
현실이 심각하다면 때로는 두테르테나 혹리들과 같은 충격·대증요법도 필요하다.
하지만 제도 개선과 교육 등 근본적인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공자는 "법으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은 무슨 일을 저질러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덕과 예로 부끄러움을 알게 해야 범법이 줄어든다"고 했다.
현재 김영란법 시행령 입법예고와 공청회 등 의견 수렴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헌법재판소 심판도 계류 중이다. 법이 시행되더라도 단속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부패 풍토를 근저에서 변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보완조치가 필요하다. 불을 끄고, 동시에 뜨거운 물도 식히는 묘안을 기대한다.
아울러 전직 검사라 공연히 친밀하게 느껴지는 두테르테 당선자가 이기기 힘든 범죄와의 전쟁에서 꼭 승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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