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그의 화첩(畫帖) 속을 노닐다
(출처-조선일보 2016.06.16 단양·제천=이한수 기자)
'단양팔경' 옥순봉
인걸은 가도 산천은 의구(依舊)하다. 그림 속 절경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 있다. 옥순봉(玉筍峰)은 '단양팔경' 중 하나.
단양군수 퇴계는 1548년 어느 날 두향이라는 관기(官妓)가 청하는 말을 들었다.
제천 청풍호(충주호) 남한강 줄기를 가로지르는 옥순대교를 건너면 옥순봉(玉筍峰) 쉼터가 나온다.
방법은 하나. 단양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탄다. 역시 단양팔경 중 하나인 인근 구담봉과 옥순봉을 돌아오는 배다.
옥순대교가 멀리 보일 무렵 봉우리가 나타났다. 커다란 바위 덩어리에서 왼쪽 덩어리 하나가 갈라져 있는 모습까지
그림과 닮은 풍경이 보인다. 그림처럼 웅장해 보이지는 않았다.
유람선 노들1호 선장 손승봉씨는 "충주댐이 생기면서 남한강 수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충주호 물 깊이는 평균 60m. 수위가 높을 때 물이 들어차 나무나 풀이 자라지 못하고 누런 살갗을 드러낸 산 아랫도리
높이가 거의 150m에 이른다고 한다. 옥순봉 높이는 해발 286m.
김홍도가 찾았을 때보다 수면 위에 드러난 높이가 한참 줄어들었다. 퇴계 글씨는 물 아래 잠겼다.
심산유곡을 흐르던 한 줄기 냇물이었을 남한강은 지금 호수라 불릴 만큼 커다란 물줄기가 됐다.
김홍도는 이른 아침 옥순봉을 찾지 않았을까. 그림 속에서 물안개가 산 주위에 어른거린다.
이튿날 새벽 옥순대교 아래에서 낚싯배를 빌려탔다. 옥순봉을 바라보는 강 건너 자갈밭에 잠시 내렸다.
그래도 그림과 똑같은 구도는 아니다. 그림에서 나타나는 화가의 시선(視線)은 저 물속 깊은 곳 어디쯤일 터이다.
정작 옥순봉을 아니 오를 수 없다. 36번 국도 제천과 단양 경계를 알리는 표지판 서 있는 곳이 등산로 초입이다.
시멘트 도로에 이어 가파른 흙길을 30분(1.4㎞) 걸으면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
왼쪽은 옥순봉, 오른쪽은 구담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0.9㎞ 남았다는 옥순봉 길을 택했다.
줄곧 내리막이 이어진다. 조금 전까지 가파른 길을 오르느라 턱밑까지 차올랐던 숨이 잦아든다.
마지막 흰 바위 구간은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다. 정상에는 '옥순봉'이라는 표석이 서있다.
정상 아래쪽 다른 봉우리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더 좋다. 오른쪽으로는 구담봉 절경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옥순대교 아래로 흐르는 남한강 줄기가 굽이굽이 이어진다.
이 물은 남양주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몸을 섞어 비로소 한강이란 이름으로 수도 서울을 가로질러 서해로 흘러갈 것이다.
김홍도는 '옥순봉도'를 '병진년 봄에 그렸다[丙辰春寫]'고 적었다. 1796년이다.
연풍(현 괴산군 연풍면)에서 현감 벼슬을 하다 파직된 이후다.
김홍도는 1792년 12월부터 1795년 1월까지 연풍현감으로 있으면서 단양·제천 일대 산수(山水)를 그렸다.
단양팔경인 도담삼봉, 사인암도 이 무렵 그렸다. 그는 옥순봉 스케치를 숱하게 했을 것이다.
옥순봉(玉筍峰) 그림은 병진년 화첩 말고도 간송미술관 소장 '옥순봉도'가 남아있다.
김홍도는 옥순봉을 그리면서 200여년 전 봉우리 이름을 지은 대선배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림은 다시 200여년 흐른 지금 우리가 보고 있다.
■ 단양 시내 ‘장다리식당’은 마늘정식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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