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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중국을 움직이려면 '코엑시트'라도 각오해야

바람아님 2016. 6. 27. 08:00

(출처-조선일보 2016.06.27  이길성 베이징 특파원)


이길성 베이징 특파원 사진지난 5월 중국 시안(西安)의 북한 식당 '평양은반관'은 점심 시간인데도 텅 비어 있었다. 

기자가 냉면 한 그릇을 시켜 다 비울 때까지도 홀엔 손님이 없었다. 대북 제재 효과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데 한국선 구경도 못했던 스포츠카가 식당 앞에 주차돼 있었다. 

알고 보니 중국인 단골들이 룸들로만 돼 있는 2층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투하오(土豪·벼락부자)'로 불리는 이들은 1인당 1000위안(약 18만원)짜리 메뉴가 기본인 룸에서 

북한 여종업원들의 개별 공연까지 즐긴다고 했다. 시안 지역 신문이 꼽은 '투하오가 좋아하는 식당' 

순위에서도 평양은반관은 1위에 올랐다.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는 건 중국 대북(對北) 제재의 허실이 북한 식당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역대 최강의 제재라지만 이면엔 보이지 않는 북·중 간의 은밀한 '룸'이 많은 것이다. 

북한 식당만 해도 최근 한국인 손님이 급감했지만, 드넓은 중국에 그들이 장사할 곳은 많다. 

중국 동북 지역의 북한 식당들이 한국인 손님을 거부하는 것도 결국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국인은 받으면서 우리는 왜 안 되느냐?"고 따지는 한국인을 향해 "아실 만한 분이 왜 그러십니까?"라며 

매몰차게 대한다고 한다.

요즘 중국 각지에 평양 직행 북한 고려항공 전세기가 잇따라 취항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북 제재 초기 움츠렸던 단체관광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육로 관광객까지 합치면 상당수 중국인이 북한에서 

위안화를 뿌려댈 것이다. 대북 제재 대상은 아니지만, 대북 제재에 올인하고 있는 한국으로선 달갑잖은 소식이다.

민간에서 벌어지는 이런 사례들은 사실 '안 주는 게 없다'는 중국의 대북 원조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 규모는 철저한 비밀이지만, 그걸 끊으면 북한 정권이 버틸 수 없다는 건 세계가 다 안다. 

원조의 명분은 "북한이 붕괴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중국의 몫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한 원로 학자는 "만약 북한이 붕괴해 북한 인민이 난민화한다면 그 파장은 유럽을 뒤흔든 시리아 난민 사태와는 

비교가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400㎞ 북·중 접경을 통해 지난 60년간 세뇌되고 굶주린 북한 인민 수백만 혹은 

수천만이 밀려들면 중국이 겪을 파장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 가정이 타당한지를 떠나, 적어도 확실한 것은 중국엔 북한 핵보다 그곳 인민들이 잠재적으로 더 두려운 존재라는 

점이다. 북한 김정은 입장에서는 헐벗고 굶주리고 세뇌된 인민이 대중국 외교에서 최고의 '자산'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사드 배치 같은 카드를 꺼냈지만 중국의 경제보복을 두려워하는 말부터 나오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중국을 향해 "북한의 숨통을 조이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중국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까지 드러낸 것이다. 
그런 나라를 중국이 부담스러워할 리 없다.
중국을 움직이려면, '중국이 아니라도 먹고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각오하고 그 각오를 천명해야 한다. 
적어도 정신상태만큼은 차이나로부터 언제든지 '코엑시트(Koexit)'할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