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오후여담>두테르테 현상

바람아님 2016. 6. 28. 00:04
문화일보 2016.06.27. 14:50

황성준 논설위원

로드리고 두테르테 당선자가 오는 30일 필리핀 대통령에 취임한다. 두테르테의 지난달 대선 승리는 반(反)기득권 정서와 범죄 소탕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필리핀 정치권력은 국내총생산(GDP)의 76%를 차지한 화교 ‘코후앙코’ 가문들에 장악돼 있으며, 정권 교체는 이들 간의 자리 바꾸기에 불과했다. 또 강력범죄가 만연돼 있으나, 당국은 손 놓고 있는 상태였다. 범죄조직 간부들은 체포되더라도 쉽게 풀려났으며, 설령 감옥에 가더라도 매수·협박을 통해 호화생활을 영위했다. 마닐라 외곽 뉴빌리비드 교도소에서는 수감된 거물 마약상들이 스트립바와 자쿠지를 갖춘 특실에서 마약과 성매매를 일삼은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다.

필리핀 남부 다바오 시장이었던 두테르테는 자경단을 조직, 재판 없이 범죄자 1700여 명을 처형했다. 10대 소녀를 유괴·성폭행한 범인 3명을 직접 총살하기도 했다. 덕분에 ‘징벌자(The Punisher)’란 별명을 얻었다. 대선 공약도 “범죄자 10만 명을 죽여 마닐라만에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 등 인권 단체들은 초헌법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두테르테는 개의치 않고 있다. 오히려 마약 매매 용의자는 사살하라며, 최고 500만 페소(약 1억5000만 원) 포상금을 약속했다. 이에 필리핀 경찰은 대선 이후 최근까지 마약 용의자 최소 59명을 사살했다.


필리핀은 1960년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부유한 국가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필리핀만큼만 잘살았으면” 하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필리핀은 빈곤과 범죄로 얼룩진 채, ‘대졸 가정부 수출국’이란 오명을 갖고 있다. 흔히 가난이 범죄의 원인이라 하지만, 범죄가 가난의 원인이기도 한다. 치안 부재 속에선 정상적 경제활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묻지 마 살해’가 빈번해지는 등, 치안 불안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성범죄 보호관찰 대상자가 성폭행 살인을 저지른 뒤, 전자발찌를 풀고 달아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법원의 영장이 없다는 이유로 이동경로가 경찰에 제공되지 않았다.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도망칠 경우, 즉각 이동경로를 경찰에 알려줘서 신속하게 검거할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을 고쳐야 할 것이다. 범죄자에 대한 지나친 인권보호가 선량한 다수에게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 두테르테 현상이 남의 일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