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탄원서
(출처-조선일보 2016.06.25 최원규 논설위원)
▶형사재판에선 이른바 '범털'이든 잡범이든 탄원서나 반성문 하나쯤은 꼭 낸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다.
▶관심거리는 탄원서 효과가 있는지 여부다. 판사에게 물어보면 열이면 열 "별 효과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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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대필(代筆) 세대'
(출처-조선닷컴 2016.06.24 김광일 논설위원)
이젠 말할 수 있다. 큰형이 군복무 때 서부 전선에서 받아든 어머니 편지는 막내가 대신 썼다.
어머니도 문자 속이 밝으셨지만 군인 맏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어려워하셨다.
안방에서 난감해하시는 어머니를 곁눈질하고 있자니 잠시 뒤 막내를 부르셨다.
늘 엄한 어머니가 그때만큼은 멋쩍은 웃음과 함께 부탁을 꺼내셨다.
펜글씨와 잉크 냄새에 막 익숙해지던 중학생 막내는 '몸조심하거라' 같은 낮춤말을 엄마 대신
큰형에게 해본다는 게 신기했다.
▶장년층에게 '대필'이란 지금은 없어진 대서소(代書所) 혹은 연애편지 써주기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 요즘은 아예 대필 업계가 호황이란다. 돈만 내면 어떤 글이든 써준다. 자기소개서가 개중 많다.
탄원서·경위서·진술서·사과문·계획서… 없는 게 없다.
사직서도 대신 써준다. 어떤 남자는 아내에게 잘못을 비는 반성문을 대신 써달라 맡겼다고 한다.
다행히 유서 대필 소리는 못 들었다. 단골은 휴대폰 문자와 SNS에 길든 디지털 세대다.
▶법률 기관에 내는 문서를 아무나 대필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
원래 변호사만 맡아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법원에 내는 반성문·탄원서를 대신 써준다는 광고가 버젓이 나돈다.
대필은 자칫 실체적 진실이나 진짜 감정과 전혀 동떨어진 글을 짓기도 한다.
누군가 대신 써준 가짜 편지가 인간관계를 뒤튼다. 처벌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그래도 수요가 있으니 시장이 선다. 종류별로 A4 용지 한 장에 5만~10만원까지 여러 가지다.
▶작년에 OECD가 '문장 이해력과 수치 이해력'을 조사한 보고서를 냈다.
일본은 고루 1위를 차지했고 우리는 문장 이해력이 평균보다 낮은 10위였다.
이는 건강·취업률·소득과도 관계가 깊었다. 고급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은 더 처졌다.
친구랑 주고받는 문자는 영화 엔딩크레디트 올라가는 속도처럼 빠르다.
그러나 길고 논리적인 글에는 끙끙대다 손을 들고 만다.
마침 고려대 연구팀도 스마트폰을 일찍 쓸수록 중학 국어 성적이 떨어진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어머니도 말씀이 속사포셨다. 그래도 훈계는 앞뒤가 정연하셨다. 자진해 종아리를 걷지 않을 수 없었다.
'문자질'이 하루 300건 넘는 SNS 세대는 텍스트 생산은 많지만 앞뒤를 잇는 컨텍스트에 약하다.
스마트폰 강국이 되면서 생긴 응달이다.
다른 나라는 대필업이 노인이나 장애인을 위한 특수 서비스다. 우리처럼 '묻지 마 대필'은 없다.
아무리 논술 학원이 성업해도 스마트폰에 빠지면 문장력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다.
어머니 음성이 들린다. "종아리부터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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