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7.01 양정웅 서울예대 교수·극단 여행자 대표)
2003년 이집트 공연 때 일이다. 무대를 만들러 갔던 스태프가 돌아오지 않았다.
공연이 임박하면 연출자는 감정의 시한폭탄이 된다. 기다리다 지쳐 목공소를 찾아갔다.
우리 스태프와 이집트인들이 그늘에서 다정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한국인의 큰 목청을
한껏 뽐내기 시작했다. 이집트인들은 다혈질의 한국인을 이상한 듯 쳐다봤다.
문제인즉, 장치에 들어갈 특정 목재가 내일 온다는 것이었다.
문제인즉, 장치에 들어갈 특정 목재가 내일 온다는 것이었다.
내 성화에 못 이겨 나머지 장치부터 조립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에 속도가 중요한 우리와 달리 이집트인들은 여유롭게 움직였다. 느림의 미학이었다.
나는 이집트인 관계자를 불러 작업이 늦어져서 겪는 피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화내는 나를 이해할 수 없는 듯 보였다. 하늘을 보며 손짓으로 '모두가 알라신의 뜻'이라고 했다.
'목재가 안 오는 게 알라신 뜻이라고?'
결국 무대장치 없이 공연은 올라갔다.
결국 무대장치 없이 공연은 올라갔다.
우리는 무대 없는 불안을 극복하며 배우들의 신명과 단합만으로 공연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리고 한국 최초로 카이로 국제실험연극제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화를 내고 불안에 떨었던 모습들이 짧은 편린이 되어 스쳐갔다.
이집트인의 말의 숨은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현재를 수용하고 순간을 즐기라는 것?
설혹 그게 무대장치 없이 공연하게 될 큰 사고일지라도?
화를 내는 대신 그 상황을 좀 더 일찍 수용하고 즐겁게 연습했다면?
우리는 모두 다음 순간에 올 기적과 같은 선물이 있음에도 매 순간 현재의 불안과 두려움을 견디지 못한다.
창피하고 부끄러워졌다. 그 뒤로 우리 공연은 무대장치 없이 단출해졌다.
해외 공연 가는 후배들에게 종종 그 일화를 이야기하곤 한다.
인생의 수많은 난관을 수용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체유심조라 모든 것이 너의 마음속에 있다.' '주여 당신 뜻대로 하옵소서.'
인생의 수용적 태도에 대해서 부쩍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7월의 일사일언 필자는 양정웅 교수를 비롯, 황장원 음악 칼럼니스트, 김은경 한국전통조경학회 상임연구원,
따루 살미넨 작가 겸 방송인,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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