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16.06.30. 17:50
영화를 보러 갔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관객이 별로 없었고 내 옆자리도 비어 있었다. 불이 꺼지고, 영화 시작 전에 나오는 광고가 거의 끝나갈 즈음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헐레벌떡 계단을 올라와 옆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가방을 뒤적이더니 무엇인가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냄새로는 햄버거 같았다. 식당에서 맡는 햄버거 냄새는 고소하기도 하고 식욕을 자극하기도 하는데, 극장에서는 냄새가 역겹고 불쾌하기만 했다. 뭐라고 주의를 줄까 망설이며 옆 사람을 돌아보았다.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젊은 여성이 커다란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황급히 빵을 한 입 베어 먹고 있었다.
이십대 초반의 학생이었을 때,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극장 좌석에서 일어나야 했던 시절에, 학교 수업을 빼먹고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울과 궁색이 극에 달하던 시절이었던 것은 기억한다. 조조 영화였고, 피 튀기는 호러 영화였는데,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눈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숫자였다. 나는 맨 앞줄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가방 속에는 점심 도시락이 들어 있었고, 아침을 굶어서 배가 고팠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의 반경 2미터 안은 모두 비어 있었으므로, 나는 도시락을 꺼냈고, 영화를 보면서 천연덕스럽게 그걸 다 먹었다. 극장 안이 도시락 반찬 냄새로 가득 찼을 것이다.
내 옆에 앉아 햄버거를 먹고 있던 그녀는 결국 나에게서 아무런 핀잔도 듣지 않았다. 까마득한 옛날, 극장에서 도시락을 꺼내 먹던 사람 옆에 앉은 우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며 그녀를 굳이 내 자리에 갖다 놓지 않았더라면, 아무 말 없이 넘어갈 수 있었을까.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혼자 영화를 보러 와서 햄버거를 꺼내 먹겠냐며, 그까짓 냄새쯤이야 참으면 그만이라며, 이해할 수 있었을까. 확신할 수 없지만 세 번에 한 번쯤은 굳이 어둠 속에서 뭔가 먹어야 할 그들의 사정을 헤아려볼 것 같기는 하다.
부희령(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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