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따뜻한 것과 뜨거운 것

바람아님 2016. 7. 4. 00:05
국민일보 2016.07.03. 17:18

계절은 점점 여름의 가운데로 가고 있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한낮엔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여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시간이 늦어져 이젠 해가 져야 집 밖으로 나오게 된다. 계절의 변화에 제일 민감한 것은 역시 덮고 자는 이불일 것이다. 어느 샌가 우리 집 남자는 이불을 덮지 않고 잔다. 하지만 나는 봄부터 덮고 있던 차렵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려야 잠이 온다. 

아무리 더워졌다고는 해도 아직 열대야는 오지 않은 것이다. 열이 많은 남자가 열어놓은 창으로 들어오는 초여름 밤공기가 살갗에 닿는 게 싫고, 또 나는 약간의 무게를 느낄 만큼의 무게가 나를 눌러줘야 잠이 잘 온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같은 침대에 누워 있어도 이불은 늘 따로 덮고 잔다. 겨울이면 내 손발은 너무도 차가워지는데, 그럴 때 뜨거운 남편의 다리에 내 차가운 발을 대면 소스라치게 놀라 화를 내기도 한다. 나는 가끔 그것이 재밌어서 일부러 그럴 때도 있다. 

나는 따뜻한 것이 좋은데 왜 내 몸은, 내 마음은 점점 차가워지는 걸까? 어쩌면 건강상의 문제로 손발이 차고,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타고 난 체질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 오빠와 올케언니도 에어컨 트는 문제나 난방 문제로 의견차이가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나만이 아니고 우리 형제가 다른 이들보다 확실히 추위를 잘 타는가 보다 생각하게 된다.

근데 이 따뜻함의 온도라는 것은 너무 주관적이라 나에겐 따뜻한 것이 누군가에겐 너무 뜨거운 것일 수도 있고, 나에겐 시원한 것이 또 누군가에겐 차가운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자신은 ‘차가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건 그냥 내 판단인데 그렇게 본인이 ‘차가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치고 아주 차가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타인의 감각으로 느낄 자신의 차가움을 인정한 사람은 그만큼 따뜻함의 여지를 아는 사람들인 것이다. 너무 뜨겁다며 내 차렵이불이 자기 살갗에 닿을까봐 내 쪽으로 밀어 넣는 남자라도 새벽녘이 되면 발치에 구겨져 있는 홑겹 이불을 끌어다 덮는다.


유형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