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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석도' 입증할 '조선어사전' 초판본 찾았다

바람아님 2016. 8. 29. 00:13
한겨레 2016.08.28. 22:06

1938년 조선어사전간행회 발행
‘독: 돌의 사투리. 석’ 첫 문헌기록

문세영 주도한 최초 우리말 사전
우리문화가꾸기회 일본서 ‘발굴’
오늘 국치일 106돌 맞아 ‘공개’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석도’ 명기
“일본보다 4~5년 앞서 영토 확정”
국회도서관서 ‘독도’ 심포지엄·전시

'1900년 10월25일 공표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는 울릉도와 부속된 죽도(댓섬)와 석도를 조선의 고유 영토로 공표했다. 이 칙령에서 명시한 ‘석도’가 바로 ‘독도’란 사실을 입증해주는 첫 문헌기록이 발굴됐다.

사진 우리문화가꾸기회 제공
사진 우리문화가꾸기회 제공

독도와 동해에 대한 고문헌과 지도를 발굴해 공개해온 우리문화가꾸기회는 최근 “1938년 발행된 최초의 우리말사전인 <조선어사전>의 초판본을 입수해 379쪽에서 ‘독: 돌의 사투리. 石’으로 풀이된 내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칙령 41호’는 ‘독도’란 명칭이 처음 등장하는 일본 쪽 기록인 1904년 9월 ‘군함신고행동일지’보다 4년 앞선다. 또한 일본 내각에서 독도를 ‘다케시마’(죽도)로 명명하며 영토 편입을 결정한 뒤 ‘시마네현고시 제40호’에 수록한 1905년 2월보다는 5년 앞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본 정부나 학계에서는 ‘칙령’에 적힌 ‘석도’가 ‘독도’와 같다는 문헌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조선의 영유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해왔다.


최근 일본의 고서점가에서 ‘조선어사전’을 입수한 이훈석 우리문화가꾸기회 상임이사(세미원 대표)는 “우리나라 지명이나 고유명사 중에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한자가 많고, ‘돌=독=석’으로 쓴 사례는 무수히 많아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지만, 지금껏 일본은 문헌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우리 쪽 주장을 무시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제의 통제 속에서 조선어사전간행회 주도로 박문서관에서 펴낸 ‘조선어사전’ 초판본에서 분명하게 용례를 밝혀놓은 만큼 “일본 쪽 ‘억지’에 반박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고 그는 평가했다.


최초의 뜻풀이(주석) 국어사전인 ‘조선어사전’은 문세영(한국전쟁 때 행방불명)이 1917년부터 추진을 시작해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한 뒤 이윤재·한징 등의 도움을 받아 20여년 만인 1938년 약 10만 어휘를 정리해 풀이해놓은 역작이다. 최현배의 <우리말본>(1937년), 김윤경의 <조선문자급어학사>(1938년)와 함께 우리말 관련 3대 중요 도서로 선정된 책이다. 하지만 지금껏 초판본은 지금껏 국내에서 보이지 않고 있고 이번에 일본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다.


국내 학계에서는 지금껏 ‘석도=독도’를 간접적으로나마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문헌 기록 조사와 연구 작업을 벌여왔다. 국립중앙도서관 이기봉 고서전문원의 ‘순한국말 지명과 한자 표기의 관계를 통해 본 석도·독도 고찰’(2012년 <문화역사지리> 제24권) 논문이 가장 최근의 대표 자료에 속한다. 이 논문에서는 특히 한자어인 ‘독도’(獨島)의 ‘독’이 구한말 울릉도 일대 이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전라도 지방에서 ‘돌’(石)을 뜻하는 단어로 널리 쓰였다는 사례를 일제가 펴낸 <조선지지자료>(1911년)와 남한 모든 지역을 망라한 <한국지명총람>(1966~86년) 등 전국 지명 조사 자료를 비교분석해 밝히고 있다. 특히 1979년 나온 <한국지명총람 7>(경북편 Ⅳ)의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독도(獨島) 〔독섬〕’으로 나와 있다. “순우리말 지명의 첫번째 글자에서 ‘돌(석)’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 ‘독’의 사례로 모두 319개나 확인됐고, 이 가운데 ‘독’이 ‘돌’과 같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한자 석’으로 표기된 사례도 68개나 된다”고 이 고서전문원은 분석해놓았다. 이런 연구 결과는 “시모조 마사오 등 일부 일본 학자들이 일본어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석도=깎세섬’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논리적 오류란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고 그는 덧붙였다.

독도 사진 글씨. 사진 우리문화가꾸기회 제공
독도 사진 글씨. 사진 우리문화가꾸기회 제공

한편 우리문화가꾸기회(이사장 김문수)는 일제에 강제병합당한 경술국치 106돌을 맞아 31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리는 ‘독도의 좌도우사(左圖右史)’ 주제 학술 심포지엄에서 ‘조선어사전 초판본’을 공개할 예정이다. ‘좌도우사’는 역사를 공부할 때 왼손엔 지도, 오른손엔 역사의 기록들을 들고 함께 연구해야 한다는 뜻으로 당나라 역사서 <양관전>에 나오는 말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은주시청합기>(1667년)와 이를 그대로 인용한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나가쿠보 세키스이·1779년) 등 일본 쪽 자료를 국내 일부 학계에서 잘못 해석함으로써 오히려 일본의 동해와 독도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해온 오류를 바로잡고자 한다”고 주최쪽은 밝히고 있다.


또 이날 국회도서관 대강당 앞에서는 지도 전시회도 연다. 일본해군성의 해도와 수로지를 비롯, 메이지 시대 일본 최대 출판사 박문관에서 1893~1908년 15년간 발행한 독도 관련 지도 16점을 소개한다. 이 가운데 지도는 1893년 발행된 <신찬명치자전>에 수록된 ‘대일본제국전도’와 울릉도와 독도가 가장 처음 등장하는 지도인 1894년 다나카 아키요시의 ‘신찬조선국전도’는 울릉도와 독도의 조선 영유권을 일본이 오래 전부터 인정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단서로 가치가 높다. ‘대일본제국전도’에는 독도가 없으나 다음해 ‘신찬조선국전도’에는 비록 울릉도는 죽도·독도는 송도로 잘못 표기하긴 했지만 두 섬이 조선땅임을 명백히 표시해놓고 있다.


더불어 이날 행사에서는 일본의 지리학 대가와 선구자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들이 남겨 놓은 옛 지도에 담긴 ‘동해와 독도의 진실’을 소개하는 형식의 만화 동영상 <역사의 증언> 시리즈 첫번째인 ‘나가쿠보 세키스이 편’도 공개상영할 예정이다. 


(031)775-1835.

김경애 기자


고종 칙령 속 ‘석도’는 독도, 입증할 조선어사전 찾았다

[중앙일보] 입력 2016.08.30 01:51


‘제2조. 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하고,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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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황제가 1900년 10월 25일 공표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의 위 조항은 석도(지금의 독도)가 한국의 고유 영토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로 꼽힌다.

1905년 일본 시마네현이 독도를 불법으로 편입하기 5년 전, 이미 대한제국이 석도를 지방행정단위인 울도군의 관할 영역으로 공표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일본 학자들은 ‘석도’가 ‘독도’를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며 이의를 제기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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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석도(石島)를 울도군의 관할령에 포함시킨다는 내용이다. [사진 우리문화가꾸기회]


최근 우리 주장대로 ‘석도=독도’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문헌기록이 발굴됐다. 사단법인 우리문화가꾸기회(이사장 김문수)는 29일 “1938년 발행된 최초의 우리말사전 『조선어사전』의 초판본을 최근 국내 고서점에서 발견했다”며 “이 사전의 379쪽에는 ‘독’을 ‘돌(石)의 사투리’로 풀이하고 있으며, 이는 당시 석도가 독도의 다른 명칭이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고 밝혔다. 당시 울릉도 주민들이 독도를 ‘돌섬’의 사투리인 ‘독섬’으로 불렀으며 이것이 이후 ‘독도(獨島)’로 변환됐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라는 것이다.

『조선어사전』은 일제강점기 국어학자 청람(靑嵐) 문세영 선생이 주도해 만든 최초의 종합국어사전으로 약 10만 개의 어휘가 담겼다. 이 사전의 수정 증보판은 널리 알려졌지만 초판본은 그동안 국내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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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발행된 『조선어사전』의 초판본. [사진 우리문화가꾸기회]


대한제국 칙령에 울도군의 영역으로 표기된 죽도(竹島)가 울릉도에서 동쪽으로 약 2.5㎞ 떨어진 현재의 댓섬을 의미한다는 것은 한·일 양국 간에 이견이 없다. 하지만 석도(石島)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렸다. 일본 학자들은 석도가 독도임을 증명하는 명확한 문헌자료가 없다며 석도가 울릉도 옆의 깍세섬(관음도)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 학자들은 ‘석도=독도’임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를 다수 발굴해 반박해 왔다. 『조선지지자료』(1911)와 『한국지명총람』(1966~86) 등의 문서를 분석한 국립중앙도서관 이기봉 고서전문원은 “순우리말 지명 중에서 ‘돌(석)’과 같은 의미의 사투리로 ‘독’이 사용된 경우는 무수히 많고 한자로는 이를 석(石)으로 표기했다”며 “전라도뿐 아니라 경상도와 경기도 일대에서도 ‘독다리(돌다리·石橋)’ ‘독고개(돌고개·石峴)’ 등이 널리 쓰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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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을 ‘돌’의 사투리, ‘石’으로 풀이했다. 칙령의 ‘석도’가 지금의 ‘독도’임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다. [사진 우리문화가꾸기회]


이런 가운데 우리문화가꾸기회는 지난해 독도를 ‘조선의 것(朝鮮ノ持之)’이라고 명시한 일본 지리학자 하야시 시헤이(林子平·1738~93)의 1802년판 ‘대삼국지도(大三國之圖)’를 발굴하는 등 독도가 한국의 고유 영토임을 입증하는 자료를 다수 찾아냈다. <본지 2015년 7월 17일자 1, 2, 6면>

또 31일 오후 2시에는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왜 우리는 지금 지도를 보아야 하는가? 독도의 좌도우사(左圖右史)’란 주제의 독도 학술 심포지엄을 열어 『조선어사전』 초판본과 그간 발굴한 지도의 의의를 설명할 예정이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그동안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일본해군성 해도와 수로지, 그리고 메이지 시대 일본 최대 출판사인 박문관에서 1893~1908년 사이 발행한 독도 관련 지도 등도 선보인다.

이날 주제 발표를 하는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교양학부 교수는 “‘좌도우사(左圖右史)’는 당나라 역사서 『양관전』에 나오는 말로 역사를 공부할 때 왼쪽에는 지도를, 오른쪽에는 역사서를 놓고 함께 연구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17~18세기에 나온 역사서와 지도를 비교·분석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명백한 오류임을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참가비는 무료. 031-775-1835.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