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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트럼프의 미국은 변하고, 한국은 표류하고

바람아님 2016. 12. 19. 11:37

(조선일보 2016.12.19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前 외교부 장관)


부동산 사업가로 성공한 트럼프, 불확실성 활용해 협상하길 즐겨 

러시아 가까이해 유럽 불안 고조… 美中 경쟁 심화땐 국제 질서 격변 

트럼프 행정부와 전략적 소통 중요, 여러 네트워크로 총체적 접근해야


우리가 온통 국내 정치 문제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에도 세계는 빠르게 바뀌고 있다. 

최근 며칠간 워싱턴을 방문해 만난 인사 십여 명과의 대화에서도 그 변화의 속도가 실감 나게 느껴졌다.


아직도 예측하기 힘들고 조심스럽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로 아무래도 세계 정치가 크게 바뀔 것 같다. 

그동안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취한 행동들이 이미 기존의 미국적 통념이나 주류 정치권의 발상을 과감히 깨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트럼프 당선인은 불확실성에 익숙할 뿐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여 협상하기를 즐기는 듯하다. 

예를 들어 국무부의 자문도 없이 갑자기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통화하는가 하면 친중(親中) 인사인 아이오와주지사를 

주중(駐中) 대사로 지명해 중국 측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문제는 부동산 사업가로서의 이 같은 협상 스타일을 

국제 정치 영역에 도입할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가장 근본적인 변화 조짐은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정책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상대적으로 중국에는 부드럽게 그러나 러시아에 강하게 나갔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반대로 러시아와 가까워지고 중국과 멀어질 것 같다. 

자신처럼 친러 인사로 알려진 엑손모빌사 회장 틸러슨을 국무장관으로 지명한 것도 그렇다. 

그 결과 브렉시트로 타격을 입고 통합의 동력이 약화하고 있는 유럽에서 불안감이 높아가고 있다. 

특히 러시아 주변 발틱 3국이나 우크라이나 같은 소국들의 우려가 크다. 

2차대전 이후 미국 세계 전략의 핵심 축인 미국·유럽 관계가 이처럼 소원해지고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진다면 

결국 미국의 영향력은 약화하고 국제 질서는 빠르게 다극화되어 갈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6일(현지시각) 미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과거 1970년대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국제 무대로 끌어내 소련과 경쟁하도록 했던 것처럼 

트럼프 행정부가 미·러 관계 개선을 중국 견제에 활용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찌 됐든 미·중 관계는 더욱 경쟁으로 치달을 것 같다. 

예를 들어 트럼프 당선인은 미·중 관계의 핵심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중국 압박 카드로 활용할 뜻을 비치고 있다. 

이에 중국 측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하나의 중국'은 중국이 무력으로 대만을 통일하려 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미국이 합의한 원칙이다. 

그 후 미국은 중국이 대만을 상대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게, 그리고 대만은 독립을 추구하지 않게 양측을 압박하며 

안정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협상 카드로 활용하고 중국이 적극 대응하기 시작한다면 

상당히 복잡한 상황이 야기될 수 있다.


이는 한반도에도 상당히 중요한 함의가 있다. 바로 북핵 문제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북핵 위기를 깊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대통령 취임식 전후에 있을지 모르는 북한의 도발을 우려하고 있고, 그 경우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이 모인다. 선제 타격은 무리가 따르고 핵 보유는 절대 용납할 수 없으니 

일단은 경제 제재 강화를 통해 협상 타결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중 경쟁이 심화하면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협조 가능성도 더욱 낮아질 것이라는 점이 딜레마다.


그래서 결국 상대적으로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 한국과 일본, 특히 한국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차기 정부의 핵심 자리들이 채워지기도 전에 북한이 도발하는 경우가 문제다. 

트럼프 캠프 쪽에 아시아 전문가도 거의 없고, 국무부 관료들의 의견도 무시하는 가운데 군부 출신 핵심 인사 소수가 

강경 대응책을 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한국 측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서 미국의 현명한 대응을 유도해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어느 트럼프 캠프 쪽 사람은 그러한 선도적 역할을 하려면 트럼프 행정부와의 '전략적 소통'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특히 유권자들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반응과 이것이 반영된 의회의 견해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다원적 정치 시스템, 특히 지역구 주민들을 통해 의회로 소통하고 의회가 행정부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접근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 교민 사회는 그러한 역할을 할 정도로 성숙하지도 통합돼 있지도 못하고, 

우리의 대미 외교도 다양한 네트워크 형성을 통한 총체적 접근보다 주로 정부 부처 간 접촉에 집중하고 있다. 

게다가 일본의 아베 총리가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은 정치 리더십 부재하에 표류하고 있다. 

세상은 빠르고 복잡하게 변하는데 우리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