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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그먼 "美 민주주의 벼랑 끝..로마 붕괴 때와 비슷"

바람아님 2016. 12. 20. 23:56
뉴시스 2016.12.20 16:39

“미국 민주주의가 벼랑 끝 위기에 처해 있다. 로마 공화정 붕괴 때와 유사하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학 교수가 로마의 몰락 당시와 유사하게 미국의 공화주의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침식되기 시작했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당선인의 출현은 이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1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공화국은 어떻게 종말을 맞이하나(How Republics End)’라는 제하의 칼럼을 통해 “로마공화국의 병이 카이사르에서 시작된 게 아닌 것처럼 미국정치의 병 역시 도널드 트럼프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크루그먼 교수의 기고문 요지.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트럼피즘과 유럽의 이민배척 움직임을 1930년대의 역사적 상황과 연관시켜 생각을 한다. 그러나 1930년대의 상황만이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것은 아니다. 로마의 역사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교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로마공화국의 멸망은 우리에게 전해주는 시대적인 울림(contemporary resonances)이 있다.


로마공화국의 멸망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강력한 사람들(powerful people)이 정치규범들을 무시할 경우 공화국 체제가 독재를 막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독재는 공화국이라는 간판을 달고도 버젓이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이다.

로마의 정치는 야심가들이 벌이는 치열한 경쟁이었다. 그러나 로마 정치인들 간 경쟁은 누구도 깰 수 없는 엄중한 원칙 아래 이루어졌다. 에이드리언 골즈워디는 자신의 저서 ‘로마전쟁영웅사(원제 In the Name of Rome)’를 통해 “로마의 정치인들은 개인의 명예와 가족의 명성을 얻는 것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이를 얻기 위해 외국의 힘을 빌리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저명한 상원의원들은 “위험한 물가에서는 서로 싸움을 벌여서는 안 된다”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지금 미국의 어떤 대통령 당선인(도널드 트럼프)은 공개적으로 러시아의 도움을 청했다. 자신의 정적에게 흠집을 내 달라면서 러시아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러시아의 개입이 미국 대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공화당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쟁에서 승리만 하면 문제가 될 게 없다는 태도다.


결과적으로 공화국(미국)에는 어떤 일이 발생했는가. 로마는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로마제국은 공식적으로는 원로원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였다. 황제라는 타이틀도 원래 ‘지휘관(commander)’을 뜻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로마제국과 똑같은 과정을 거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런 사실 마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어쨌든 민주주의는 이미 파괴되기 시작했다.


최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벌어진 사건을 생각해보자. 지난 8일 대통령선거와 함께 실시된 주지사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분명한 선택을 했다. 민주당 후보를 주지사로 선택한 것이다. 그러자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의회가 주지사 권한을 제한하는 법안을 상정했다. 유권자들의 뜻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왜 공화당은 미국을 구성하는 핵심 가치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인까. 나는 이것이 이데올로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유 시장주의 정치인들은 이미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를 더 이상 문제 삼지 않는다. 올바른 정실 자본주의라면 괜찮다는 것이다.

이는 계급 전쟁(class warfare)과 관련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빈자와 중산층, 부유층간 부의 재분배는 현대 공화정이 안고 있는 지속적인 숙제다.


무엇이 민주주의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있는가. 나는 그것을 단순한 출세지상주의 (careerism)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당의 노선을 따르고, 당규를 방어하는 일에만 전념할 뿐이다.

이런 모든 일들을 통해 한 가지 분명해 지는 게 있다. 로마공화국의 병이 카이사르에서 시작된 게 아닌 것처럼 미국정치의 병 역시 도널드 트럼프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 민주주의 기반은 수십 년 동안 침식을 당하고 있었다. 과연 이를 회복할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다.


만일 구원에 대한 희망이 있다면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지를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 미국 민주주의가 벼랑 끝 위기에 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