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은 다사다난했다. 유례없이 많은 악재가 경제와 사회 전체를 옥죈 한 해였다. 최순실 농단에 국정은 마비됐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는 기업 활동에 직격탄을 날렸다. 청탁금지법 시행에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중국발 한한류(限韓流)가 겹쳐 연말 특수는 사라졌다. 내수·수출 동반 부진에 직면한 기업은 돌파구 찾기에 허덕였다. 직장인은 먹고살 걱정, 즉 구복지루(口腹之累)에 고뇌했다.
“능력이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이 같은 SNS 문자로 국민적 공분을 낳았다. 계층갈등 심화에 사회 불안은 증폭됐다. ‘헬조선’에 대한 분노는 촛불시위로 타올랐다. 기회 박탈이 문제다. 계층이동 사다리가 사라진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6’에 따르면 30대 10명 가운데 6명이 자녀 세대의 계층상승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2006년에 비해 부정적 답변 비율(3명)이 배로 치솟은 것이다. 취업난이 심각하다. 일자리를 아무리 구하려 해도 얻지 못하는 ‘구지부득(求之不得)’ 시대다.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 계층은 ‘일자리 절벽’ 앞에 좌절한다. 청년실업률은 9%를 넘어 10%에 육박하고 전체 실업률도 내년에는 3.9%에 달해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700만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자)는 자녀의 교육에 올인했다. 하지만 자녀 취업난에 함께 고민하고 고령화 여파로 부모도 부양해야 하는 ‘낀 세대’가 됐다. 자립할 나이가 됐는데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캥거루족’이 늘어만 간다. 내리사랑은 끝이 없다. 부모가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하는 시기는 자녀의 대학 졸업에서 취업·결혼·육아까지 연장된다. 자신의 노후를 돌볼 여력은 줄어든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는 세대는 1970년대 출생자다. 1970~1974년생 가운데 보수적 성향을 가진 이들의 비중은 2003년 40.3%에서 2013년 19.7%로 크게 줄었다. 이들은 20대와 30대에 외환위기(1997년)와 닷컴버블 붕괴(2001년), 카드대란(2003년),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등으로 온갖 고난과 좌절을 겪으면서 사회 변화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해진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난이 한국의 허리계층 정치 성향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한 지 딱 20년이 흘렀다. 선진국과의 격차는 여전하다. 34개 회원국 중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5년도 기준 22위고, 삶의 질 지수는 28위다. 부패인식지수, 일과 삶의 균형지수, 사회 통합 공동체 지수도 최하위권이다. 척박한 삶에 자살률 1위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일자리 미스매치도 심각하다. 고등교육 이수자 비율(45%)은 1위지만 전문·기술직 종사자 비율은 21.6%로 독일(43.5%)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OECD는 한국에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을 권고한다. 기존의 성장·소득 중심 양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포용적이고 복원력 있는, 지속 가능한 삶의 질 중심 다차원적 모델로 경제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저축하면 흙수저를 금수저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의 불씨를 되살려야 한다. 끊어진 계층이동 사다리를 복원하는 일은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하는 일만큼 중요하다.
[주간국장·경제학 박사 kyh@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88·송년호 (2016.12.21~12.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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