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12.20 황원갑 소설가·역사연구가)
지난 17일(음력 11월 19일)은 418년 전인 1598년(선조 31년)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순국한 날이다.
해마다 4월 28일 장군의 탄신일에는 여러 곳에서 기념행사를 치르지만
정작 순국일은 그냥 지나쳐 아쉬움이 크다.
이순신은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태어나 54년의 일생을 보내는 동안 온갖 고난 속에서도 충효인의와
애국애민 정신으로 일관한 민족사의 대표적 위인이다.
전쟁에 임해서는 필승의 신념과 비상한 전략전술로 백전백승한 불세출의 명장이고, 효심이 극진했으며,
부하들을 감싸주고 창의력을 길러주며, 겨레를 위한 참다운 삶의 길을 제시해준 큰 스승이었다.
1597년 7월 14일 원균이 칠천량 전투에서 대패하자 이순신이 피땀 흘려 육성한 조선 수군은 하루아침에 궤멸됐다.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빠지자 선조(宣祖)는 다시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했다.
겨우 12척 전함에 120명의 군사와 무기를 수습했지만 조정은 바다를 포기하고 육지에서 싸우라고 했다.
수군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이순신은 비장한 장계를 올렸다.
"신에게는 아직 전선 12척이 남아 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면 막을 수 있습니다.
지금 수군을 폐지하는 것은 적이 바라는 바로, 호남을 거쳐 쉽게 한강까지 진격할 것입니다.
그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비록 전선은 적으나 신이 아직 살아 있으므로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순신은 12척에 새로 1척을 보태 수군을 재건했다.
그해 음력 9월 16일 명량해협(울돌목)에서 동서고금을 통해 전무후무한 바다의 대혈전이 벌어졌다.
왜적은 133척인 반면 조선은 겨우 13척, 게다가 대패한 뒤라 장졸들 사기도 엉망이었다.
이순신은 겹겹이 포위한 적선들을 뚫고 손수 활을 쏘고 영기(令旗)를 휘두르며 독전했다.
악전고투 끝에 적의 대장선을 비롯해 왜선 31척을 격침하자 남은 적함들은 도주했다.
기적적인 대승이었다.
우리 민족은 숱한 외침을 당했고, 구국의 영웅도 많았지만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으뜸가는 구세주였다.
또 참다운 인간의 길과 충효 정신을 보여준 스승이었다.
나라가 어지럽다. 국난에 버금가는 난국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길이 열린다'는 장군의 불굴의 정신을 본받아 각자 최선을 다하자.
그것이 애국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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