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院 앞에는 正義의 女神像이 있다. 한쪽에는 칼, 한쪽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저울은 만민에게 법을 평등하게 適用하겠다는 의미다. 칼은 그 법에 따라 한 치의 私心 없이 정확하게, 그리고 嚴格하게 처벌하겠다는 의지의 형상이다. 그런데 女神像은 왜 눈을 감고 있는 것일까. 흔들리지 않고 公平無私하게 법을 적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까. 그 여신의 이름은 디케다.
공정하기로 이름난 사마천이나 공자나 예수 같은 위인은 오늘날의 한국의 현실을 어떻게 하였을까. 광화문 촛불집회가 있고 이를 반대하는 박사모나 어버이연합이 주도하는 집회도 있다. 이런 걸 보면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인 것만은 틀림없다. 처칠이 오늘날의 한국을 보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찾는다는 그의 말을 철회시켰을 것이다. 한국은 그만큼 변화되었고 달라졌으며 발전하였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의 의식의 차이는 너무나 다양하고 다르다. 20-30년 전에 한국을 떠났던 外國에 살고 있는 우리의 동포들은 ethenic food 처럼 回歸本能이나 옛것을 그리워 하는 일종의 症候群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로잡히지만 않으면 인치도 法治 이상으로 중요한 德目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 모든 것들 이상으로 인간의 무지나 능력의 결핍은 조직과 사회에 막대한 과오와 해악을 초래한다. 바로 이것이다. 한국인의 缺點은 어떤 일을 분석하고 點檢하는데 약하다. 세상만사는 모름지기 點檢하고 또 點檢하여야 한다. 그것이 사람에 관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人間의 處世術로 一貫하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있고 경계하여야 한다. 그것이 지나쳐서 法治를 소홀히 하고 법을 歪曲하고 법을 그럴듯하게 꾸며내는 영악함을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오늘날의 우리 현실이고 우리가 처한 사회다.
눈을 감았습니까. 감아야 공정하게 처리한다는데 눈을 감고
제발 公平無私하게 判決내려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