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時評>'逆세계화' 파도가 덮쳐 오고 있다

바람아님 2016. 12. 29. 23:23
문화일보 2016.12.29 12:10

이규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정치학


미국 의회 의사당 앞에, 새해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의 제45대 대통령 취임식장 만들기가 한창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새로운 대(對)유럽 외교정책을 펼칠 것이다. 외교정책은 기본적으로 국내정치의 연장이다. 미국 국내정치의 새로운 좌표와 방향 설정으로 한국은 물론, 유럽 국가들에도 엄청난 파급 효과를 미칠 것이다. 국민의 안녕과 복지를 책임지는 위정자들의 책무는 더 엄중해지고, 시민들도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유럽인들도 지난 11월 9일 미 대선을 앞두고는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낮게 봤다. 하지만 막상 그가 당선되자 엄청난 실망과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아웃사이더 혁명’으로 미국 우선주의와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 전략에 의존했다. 인기영합주의는 기득권의 부정부패와 권력 남용을 비난하고 반(反)엘리트주의를 표방한다. 트럼프는 미국 최초의 ‘비(非)공직인’ 출신으로, 워싱턴 정가의 기득권자들이 추구했던 ‘현상 유지’ 정책과의 단절을 강조한다. 세계화와 다자주의로 인한 미국민들의 피해를 강조하고, 미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철저한 실리외교 정책인 보호무역주의와 신고립주의를 공언한다. 전통적으로 미 대통령은 정당에 관계없이 유럽과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끈끈한 유대관계를 이어왔다. 반면 트럼프는 유럽과 전통적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유럽 국가에 미칠 세 가지 쟁점을 분석해 본다.


첫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무용론이다. 트럼프는 유럽 내 군사적 적실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러시아에 대한 우호적 태도를 바탕으로 나토 회원국들의 자국 안보에 대한 충분한 비용 지불을 요구한다. 미국의 분담금은 1995년 59%에서 2015년 70%를 넘어섰다. 따라서 회원국들이 2024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2%씩 분담금을 지불하기로 2014년 합의했다. 한국은 2.5%를 부담하는 데 비해, 독일은 1.4%에 불과하고, 현재 2.0%를 이행하는 회원국은 4개국뿐이다. 독일 병력은 18만 명이지만, 주독 미군은 4만7000명에 이른다. 이를 근거로 안보 무임승차론을 적극 강조한다. 트럼프가 공언한 대로 미·러 관계가 개선될 경우 유럽의 러시아 견제는 어려운 국면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지난 11월 향후 유럽연합(EU) 자체 내 유럽군 창설의 필요성에 합의했지만, 1500명 규모에 불과하다. 결국, 현시점에서 유럽 안보를 위해 회원국들이 안보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무산 가능성이다. TTIP는 유럽과 미국을 하나의 자유무역지대로 묶으려고 2013년부터 협상을 개시한 최대 경제 현안이다. 트럼프는 다자주의의 폐해, 즉 다자간 교역이 미국에 불리하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유럽 측도 식료품산업 피해로 지방경제의 고사를 우려한다. 양측이 반세계화 정서의 비등과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로부터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쇠락한 공업지대 백인 노동자들의 반란을 의식해야 하고, 따라서 향후 각종 통상 협정에서 탈퇴할 것으로 보인다. 취임 첫날 일본이 주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탈퇴 선언이 예상되고, TTIP 역시 협상이 원만치 않은 관계로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 이로써 반세계화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셋째, 국경 폐쇄와 반(反)이민정책이다. 각종 난민으로 어려움을 겪는 유럽 국가의 일부 위정자는 트럼프의 당선을 불평등과 이민 유입에 대한 불만에서도 비롯됐다고 본다. 따라서 이민 유입을 늦추거나 차단하고자 엄격한 국경 통제를 주장하고, 자유무역을 혹평한다. 중산계층과 빈곤자들을 방기한 위정자들의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새해 유럽 국가들의 선거에서 극우 세력 또는 인기영합주의가 강력하게 대두할 가능성이 짙다. 미국 우선주의 영향이 유럽 대륙에 강하게 회오리치고, 이민들에 대해 가장 인도주의적 정책을 폈던 독일에서도 ‘독일을 위한 대안’(AfD) 세력이 약진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홍역을 앓는 사이에 세계화의 역(逆)파도가 덮쳐 오고 있다. 미 신행정부는 모든 사안을 거래관계에 우선해 판단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철저한 대비로만 담보될 수 있다. 인기영합주의를 경계하고, 위정자들과 국민 모두 새로운 환경에 대안(代案)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