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시론>트럼프의 중국 손보기, 한국엔 기회다

바람아님 2016. 12. 26. 23:58

 문화일보 2016.12.26 11:30

이미숙 국제부장


안팎으로 유난히 충격적인 일이 많았던 2016년이 닷새 남았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 같은 일들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새해엔 안정이 찾아올 것이란 전망도 없다. 오히려 더 큰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국내 정치의 혼미는 약과다. 글로벌 차원에서 기존 발상으론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속출할 것이다.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주요인은 충돌로 치닫는 미·중 관계다. 대선 캠페인 때 “중국이 미국을 강간하고 있다”는 자극적 표현으로 표를 모았던 트럼프는 취임을 앞두고 중국 손보기에 들어갔다. 트럼프는 하나의 중국 원칙 변경 가능성을 시사한 데 이어, 아태지역 군사력 강화론자들을 국방부와 백악관에 포진시켰다. 신설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에는 대중강경파 피터 나바로를 위원장으로 앉혔다. 그는 “탐욕에 눈먼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날 지구의 종말이 시작된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다. 그러기 전에 무역·통상·국방 등 전방위로 압박해 중국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중국이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고 환율을 조작한다’ 식의 중국 때리기는 선거 레토릭 수준으로 받아들여졌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대선용 발언과 취임 후의 정책 실행에 거리를 두어온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트럼프는 캠페인 때의 주장을 실행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인내력을 시험해 왔고, ‘신형대국관계론’을 주장하며 패권국 행세를 해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북핵 공조 등을 이유로 그런 중국의 태도를 묵인하고 관망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일자리, 무역·통상 면에서 불공정행위를 일삼아 미국에 피해를 주는 중국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트럼프의 ‘중국 죽이기 작전’엔 패권국을 꿈꾸는 중국에 대한 견제심리도 깔려 있다. 유일 슈퍼파워 미국은 패권 도전국을 용인하지 않은 전례를 갖고 있다. 1980년대 중반 경제가 급팽창하던 일본을 플라자 합의로 굴복시켰다. 당시 일본에선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이 유행했고 일본 자본은 미국의 자존심 뉴욕 록펠러센터까지 사들였지만 플라자합의로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의 길로 접어들었다. 트럼프가 중국 손보기에 나선 것은, 중국 자본이 뉴욕의 월도프아스토리아호텔 등 랜드마크를 매입한 것에 대한 경계심리가 발동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국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트럼프가 임기 중 중국을 손볼 수 있다면 그것은 역사의 진전일 수 있다. 국제규칙을 무시하는 중국의 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미·중 통상 충돌이 발생할 경우 중단기적으로 한국에 피해가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약이 될 수 있다. 중국은 거대 시장을 활용해 자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을 상대로 부당한 제약과 페널티를 가해 왔고, 중국공산당과 지역 정부의 불투명한 정책 추진 때문에 한국기업을 포함한 외국기업들의 피해도 컸기 때문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은 2017년이 국제질서가 ‘리셋’되는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의 시도가 옳든 그르든, 좋든 싫든 간에 우리나라도 그 질서의 재편 방향에 따라 국가 전략을 세워야 한다. 트럼프식 대재편의 시대는 분명 위기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협력의 시대엔 공통점이 부각되지만, 갈등의 시대엔 차이점이 부각된다. 그럴 경우 우리는 아마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논란 때처럼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그럴 땐 무엇보다 국가 생존과 안보, 자유민주주의가 최우선의 원칙이 돼야 한다. 핵 협박을 일삼는 북한을 향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처럼 개성공단 재가동 및 사드 배치 재검토론을 펴는 것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외교통상부 장관과 통일부 장관을 모두 역임한 희귀한 경력의 홍순영(2014년 작고) 전 장관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못된 혈육보다 생각이 맞는 이웃이 더 낫다’고 했다. 시대의 논리가 바뀌는 전환기엔 철저히 우리나라를 위해 뭐가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 어떤 위험 부담을 기꺼이 감수해야 할 것인지를 신중하게 판단하고 담대하게 행동해야 한다. 미·중 충돌시대 국가 생존을 위해선 여우의 지혜와 사자의 용기가 필요하다.


이미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