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朝鮮칼럼 The Column] 민족주의 宿醉 깨우는 한·일 시민들의 용기

바람아님 2017. 2. 2. 23:42
조선일보 2017.02.02 03:17

감정적 도발 주고받던 韓·日 관계
설 연휴 때 부산 위안부 소녀상에 일본인이 두고간 사과 편지와 꽃
'제국의 위안부' 쓴 박유하 교수에 학문적 자유 인정한 법원 판결이
화해 모색의 새로운 전기 되어야

지난 연말부터 벌어진 일련의 사태로 최근 한·일 관계는 급속하게 경색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 경색 국면에 나타나는 현저한 특징은 편협한 민족주의의 폐쇄 회로 속에서 감정적 도발과 역(逆)도발이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다. 이러한 도발 교환 과정에서는 으레 그렇듯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모순적 이중 의식이 활개 친다. 다시 말해 내 대응은 '정당한 분노의 표출'이자 '부득이한 정당방위'로 옹호하고, 상대방 대응은 '오만한 감정적 도발'이자 '부당한 선제공격'으로 비난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지율 확대를 노리는 양국의 일부 정치인은 단기적 계산에 따라 흥분한 국민감정에 불을 붙이는 선동적 발언을 함으로써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먼저 지난 연말 부산의 시민 단체가 일본 영사관 인근에 세운 위안부 소녀상을 둘러싼 한·일 양국의 충돌(주한 일본 대사 소환, 통화 스와프 협상 중단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의 소녀상 설치에 대한 항의로 주한 일본 대사를 소환한 일본 정부의 조치를 일본 국민 대다수가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된 바 있다. 부산의 시민 단체는 위안부 협상 졸속 추진에 대한 정당한 분노의 표출이자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소녀상을 설치했고, 한국의 일부 각료와 일본 정부는 '공관 품위 손상' 등을 이유로 그 설치를 무분별한 감정적 도발로 받아들였다. 이 와중에 경기도의회가 독도에 소녀상을 건립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사태는 더욱 악화된 바 있다.


이어서 대마도의 한 사찰에서 한국 절도범들이 훔쳐온 고려시대 금동불상을 원 소유주인 부석사에 돌려주라는 최근 한국 법원의 1심 판결이 새로운 갈등의 불씨로 떠올랐다. 원래 한국 소유인데 일본이 약탈한 것이니 돌려줄 필요가 없다, 곧 일종의 정당방위적 '애국' 판결이라는 여론이 한국에서는 우세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본에 건너간 경위가 여하튼 일단 일본 사찰에서 오랫동안 보관하던 문화재를 훔쳐 간 것이니 일본에 반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일본에서는 이를 한국의 막무가내식 민족주의 도발 또는 '판결 도발'로 받아들일 법하다.

한국의 이런 사태에 마치 맞불이나 놓듯이 지난 1월 28일 일본 정부는 초·중학교 사회과 신학습 지도 요령에 독도와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명기하기로 방침을 정함으로써 한국과 중국의 국민감정을 자극했다. 일본으로서는 정당한 영토 주권 확인이었겠지만, 한국 언론들은 이를 '교과서로 독도 도발'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일제히 반발했다. 바야흐로 한·일 양국 정부와 국민의 감정적 충돌은 막장 드라마나 치킨게임처럼 파국으로 치닫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일 관계가 이처럼 경색으로만 치닫는 것은 아니다.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박유하 세종대 교수는 최근 1심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학문의 자유는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고 학문적 표현은 옳은 것뿐만 아니라 틀린 것도 보호해야 한다"며 명예훼손 여부보다는 폭넓은 학문의 자유를 중시하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위안부 문제를 '전쟁 범죄'로 보는 한국의 지배적 프레임과 달리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문제를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저지른 '국가 범죄'로 보면서 일본 제국의 책임을 묻는데, 이러한 태도는 사실 일본의 인식과 맥이 같은 면이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석의 다양성을 재판으로 확정해야 하는 명예훼손 문제가 아니라 학문의 장에서 논쟁과 토론을 통해서 해결해야 하는 독자적 사안으로 취급함으로써 현명하고 유연한 융통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현명한 처신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나타났다. 설 연휴에 부산의 소녀상을 방문한 일본인 3명이 놓고 간 '일본인으로서 사과한다'는 내용이 적힌 편지와 꽃다발이 보도되며 화제가 된 바 있다. 부산 시민 단체의 한 관계자는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정부와 달리 일본의 잘못을 사과하는 일본인이 있어 고맙고 다행"이라고 말하면서 이를 반겼다.


나는 박유하 교수 재판에서 법원 판결이 보여준 사려 깊은 판단과 일본 사회의 다수 의견과 다른 자신들만의 소신을 떳떳하게 '실명'으로 남긴 일본 시민의 용기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이처럼 다양하고 색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 있는 국민이 한·일 양국에 촘촘히 포진해 있을 때 비로소 다양성과 차이를 포용하면서 건강한 양국 관계가 발전하리라고 믿는다.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