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무협지로 유명한 화산파(華山派)의 도사 양성 커리큘럼을 보니까 고급 과정에 표주(漂周)가 있었다. 3년간 돈 없이 천하를 돌아다녀야 학점을 딴다. 방점은 '돈 없이'에 있다. 신용카드 가지고 다니면 유람이 된다. 카드 없이 돈 없이 다녀야 세상 공부가 된다.
두보는 54세부터 시작해서 59세에 죽을 때까지 표박(漂泊)을 하였다. 말년에 고생만 하다 간 것이다. 표(漂)는 떠돈다는 의미이다. 박(泊)은 배를 댄다는 뜻이다. 두보는 난리가 나자 배를 타고 고향을 떠나 중국 양쯔강 일대를 떠돌아다녔다. 혼자도 아니고 가족을 동반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두보는 폐병에다가 배를 타고 떠돌면서 중풍까지 왔다. 오른팔은 마비됐고 한쪽 귀도 들리지 않았다. 식구들 먹을 끼니도 없는 데다 습기 찬 조그만 배에서 쪼그려 잠을 자는 생활을 했으니 몸이 병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떠돌다가 그 유명한 후난성의 웨양루(岳陽樓)에 구경을 갔다.
몸은 병들고 가족은 배고파서 떨고 있는 상태에서도 호쾌한 둥팅호(洞庭湖) 풍광이 그의 심금을 울렸다. 이때 남긴 두보의 시가 '등악양루(登岳陽樓)'이다. 이 시에서 '吳楚東南坼(오초동남탁) 乾坤日夜浮(건곤일야부)' 대목이 절창(絶唱)이다. '오나라와 초나라는 동쪽과 남쪽으로 열려 있고, 하늘과 땅은 밤낮으로 물 위에 떠 있다'는 의미이다. 둥팅호가 천하의 오나라와 초나라를 나누어 놓았고, 건곤이 그대로 물 위에 떠 있다는 상상력은 너무나 호쾌하다. 생활의 주름은 하나도 없다. 그 고생과 서러움과 고독을 겪으면서도 어떻게 이런 천지의 호탕함을 노래할 수 있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를 쓸 때 두보의 나이가 57세였다고 한다. 인간은 춥고 배고픈 고생을 해야 작품이 나오는 것인가! 화산파 도사들은 역술(易術), 학술(學術), 의술(醫術)을 익혀서 표주를 해도 밥은 굶지 않았지만, 두보는 무엇을 가지고 생계를 해결하였을까? 시술(詩術)이었을까. 조선의 김삿갓은 시술로 유랑 생활을 하였고, 이중환은 파직당하고 전국을 떠돈 방랑 끝에 저술(著術)을 남겼다. '택리지(擇里志)'가 그것이다. 필자는 칼럼술(術)을 가지고 전국을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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