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여적]비운의 맏아들

바람아님 2017. 2. 16. 23:51

경향신문 2017.02.16 21:21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 10조’는 맏아들의 왕위계승 원칙을 천명했다. ‘맏아들이 불초할 때는 둘째가, 둘째가 불초할 때는 형제 중에서…’라는 단서 조항도 있었다. 조선시대 들어 특히 ‘적자와 장자’의 의미가 강조됐다. 왕자의 난(1398년)으로 정권을 잡은 이방원은 “적장자가 뒤를 이어야 한다”면서 형인 방과(정종)를 옹립한다. 형에게 일단 넘겨주고 몇 년 후에 자신이 ‘왕세자’가 되어 3대 임금으로 등극하는 절차를 밟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불노라는 사나이가 ‘내가 정종의 맏아들’이라며 불쑥 나타났다. 숨겨놓은 정종의 아들이 분명했다. 그러자 이방원의 신하들은 ‘죽 쒀서 개 주는 거냐’고 앙앙불락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간파한 정종은 “불노는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정종은 한술 더 떠 아들 15명에게 ‘전원 출가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복동생들을 죽인 데 이어 ‘내(태종)가 양위 발표를 하자 웃는 낯을 보였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세자의 외숙들까지 몰살시킨 태종이었다.


정종이 큰아들을 세자로 옹립하려 했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소현세자는 아버지 인조의 질투 속에 의문사를 당했다. 볼모로 잡혀 있던 청나라로부터 엄청난 선물을 받고, 귀국길 백성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금의환향한 게 화를 불렀다. 귀국 두 달 만(1645년)에 급사한 소현세자의 몸은 온통 검은색을 띠었고, 이목구비 일곱 구멍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인조실록>조차 “약물에 중독된 것 같았다”고 했다. 독살설이 제기될 만하다. 27명의 조선 임금 중 적장자는 7명(문종·단종·연산군·인종·현종·숙종·순종)뿐이다. 신하 간·형제간 암투는 물론 임금·세자 간에도 처절한 권력투쟁을 벌인 결과다.


믿고 싶지 않지만 김정남 피살 사건을 북한이 저질렀다면 이것은 왕조시대 권력투쟁극 중에서도 최악의 막장드라마라 할 수 있다. 할아버지(김일성)에게 인정받지 못한 유부녀 며느리(성혜림)가 낳은 아들이지만 장남은 장남 아닌가. 태종이 생각난다. 피도 눈물도 없던 조선의 태종이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형(정종)의 맏아들(불노)을 죽이지는 않았다. 측근들이 “변란죄로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고집했지만 태종은 “죄를 묻지 않겠다”고 일축했다.

<이기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