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서소문 포럼] 개 한 마리와 직원 한 사람만 공장에 있다면

바람아님 2017. 2. 13. 23:51
중앙일보 2017.02.13 01:01

기본소득 논의는 포퓰리즘 아닌 새 복지 패러다임 고민
보수·진보 진영, 시대 변화에 적합한 복지 체제 논쟁해야

“미래의 공장에는 개 한 마리와 직원 한 사람만 있을 것이다. 개는 사람이 기계를 건드리지 못하게 감시하기 위해서. 사람은 개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서 필요하다.”


이 표현, 우습지만 개그가 아니다. 과장은 섞였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간의 자화상이다. 억만장자 벤처 캐피털리스트인 와이콤비네이터의 샘 올트먼 회장은 고민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준다. 복지 시스템은 무력하다. 인간의 존엄은 바닥으로 떨어질 위기다. 그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지난해 8월부터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100가구를 선정해 1년간 매달 200달러를 주고 있다. 어떤 조건도 없다.

프로젝트가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사람에게 노동의 대가 없이 돈을 지급하면 어떻게 될까. 일을 하지 않고 놀까. 일정 소득이 보장되는 인간적 환경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을까.’


억만장자는 ‘기본소득(Basic Income)’이 잿빛 사회에서 한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기본소득제란 국가가 개인에게(가구 단위가 아니다), 자격 제한 없이, 의무를 요구하지 않고, 돈을 주는 걸 말한다.

시장경제가 가장 잘 작동한다는 미국, 그것도 실리콘밸리에서 이런 실험이 진행돼 황당해 보이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기본소득은 좌우 진영을 가리지 않고 예부터 논의해 온 철학이다.


멀리 들춰보자. 자유주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생산물을 분배할 때 공동체 구성원에게 일부를 먼저 균등하게 할당해야 한다”고 했다. 유물론적 세계관을 설파한 카를 마르크스는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 필요에 따라 나눠 가져야 한다”고 했다.

기본소득 철학은 그동안 음지에 묻혀 있었다. 비현실적인 데다 비도덕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조건 없이 돈을 주면 ‘도덕적 해이’가 촉발된다는 게 주류 인식이었다. 바뀌고 있다. 일해도 복지 사각지대에 갇혀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는 국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


보수가 먼저 움직였다. 복지 행정비용과 조직을 줄일 수 있다는 실용성이 부각됐다. 국가가 수급자에게 제공하는 복잡한 복지제도를 없애고 대신 그 서비스를 이용할 돈을 개인 통장에 넣어 주면 끝이다. 이 시스템에선 국가가 공공주택을 지을 필요가 없다. 공무원이 수급 자격 확인을 위해 저소득층의 소득이나 부양가족 등을 일일이 따지지 않아도 된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이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이다.


지난해 6월 기본소득제 도입을 위한 스위스 국민투표에서 투표자의 76.6%는 반대표를 던졌다. 이걸 두고 공짜 빵의 유혹을 이겨내고 삽을 들었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 유권자들이 ‘현상 유지’를 택한 건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기본소득제로 대체할 수 있을지,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지 등에서 확신을 갖지 못해서다. 스위스는 앞으로도 계속 기본소득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핀란드 중도우파 정부가 올해 기본소득제 실험을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업수당에 의지해 사는 복지병 환자들이 안정적 소득이 보장되면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지를 따져보기 위해서다. 취업을 해 소득이 늘어나도 기본소득은 보장된다. 핀란드 정부는 환경이 안정된 기본소득제 대상자가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찾겠다는 의지를 키울 것인지를 관찰하고 있다.


한국에서 일부 대선주자가 기본소득제를 들고 나왔다. 이재명·심상정 후보는 청년이나 노인 등 특정 세대에게 조건 없이 나랏돈을 주겠다고 한다. 이들은 기존 복지제도의 정비는 언급하지 않았다. 큰 틀에서 보면 기본소득제가 아니다. 재원 마련의 구체성도 떨어진다.

문재인·안희정·안철수 후보는 사회적 약자를 우선 지원하는 선별적 복지 쪽에 기울어 있다. 기존 복지제도를 그대로 두고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는 건 무리라고 본다.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지는 아직 판단할 수 없다. 다만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간은 더 소외되고 있다. 복지 사각지대는 여전히 두껍다. 새 복지 패러다임이 필요한 이유다. 이번 대선에서는 새로운 희망 사다리를 찾을 수 있을지, 실현 가능성은 있는지 치열한 논쟁이 펼쳐져야 한다.


김종윤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