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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그리고 당신의 편지를 읽는다

바람아님 2017. 2. 17. 23:26
문화일보 2017.02.17 14:30

강은교 시인, 동아대 명예교수

오랜만에 호젓한 길을 걷는다. 아마 언젠가 누군가 이 길을 걸었겠지 하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울컥해진다.

어느새 산은 여린 분홍색으로 부풀어 있다. 마치 산이 둥실둥실 떠오르는 듯하다. 여린 분홍색 둥근 치마를 펴고 하늘 아래 조신히 앉아 있는 것도 같다. 열리려는 저고리를 부끄럽게 여미며, 두둥실 앉아 있는 그것.

해 질 무렵의 그림자는 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낙엽이 마치 꽃 같다. 황혼의 빛이 놓인 그 부분만 바알갛다. 황혼의 빛이 밟고 있기 때문일까. 개울은 또 어찌 그리 부끄러운 듯 앉아 있는지, 아직 남은 눈들이 하얗게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도 마치 웃고 있는 것 같다. 바위들이 반쯤 녹은 눈에 싸여 미소를 던지고 있다.


어느새 길은 모랫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발이 푹푹 빠진다. 조금 걸으니 발바닥 밑에서 모래들이 밟힌다. 운동화를 벗어 모래를 턴다. 모래들이 고꾸라지듯 떨어진다. 모래들은 떨어지면서도 나를 향해 소리친다. ‘신발 몇 켤레 갈아신으니, 인생이 다 갔지요?’ ‘그래그래.’ 나는 고개를 주억거린다.

갑자기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아니 편지를 읽고 싶어진다. 죽은 이들이 쓴, 그러나 살아 있는 편지들…. 은꽃잎처럼 모래 떨어지는, 소소한 삶들이 들어 있는 편지들, 엽서들.


‘남덕 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자랑스럽고 고귀하며, 더할 나위 없이 상냥스러운 나만의 사랑, 건강히 잘 지내나요. 당신 생각으로 가슴은 늘 터질 것만 같다오. 수속이 잘 되지 않는다고 너무 초조해하지 말아요. 소품전이 끝나는 대로 구상 형의 힘을 빌려 갈 수 있을 테니까. 그대 아름다운 마음, 행여 어지러워지지 않을까 걱정스럽소. 난 하루하루 작업하며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지…아고리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아내와 오로지 사랑으로 한몸이 되어 아주 멋진 작품을 진실로 새로운 표현을, 대작을 끝도 없이 만들어내고 싶소.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모든 것을 바쳐 하나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는 없어요…나는 스스로를 올바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예술은 끝없는 사랑의 표현이라오. 진정한 사랑으로 가득 찰 때 비로소 마음은 순수와 청정에 이를 수 있는 것이지요.


마음의 거울이 맑아질 때 비로소 우주의 모든 것이 올바르게 마음에 비치는 것입니다. 남이야 무엇을 사랑해도 좋은 것입니다. 열심히 끝없이 뭔가를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늘은 나에게 끝도 없이 아름다운 남덕을 주었습니다….’[1950년대 어느 날, 화가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


‘사람들은 이따금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지. 끔찍한, 아주 끔찍한 새장과도 같은 무언가에 갇혀서. 하지만 해방이, 궁극적인 해방이 있음을 잘 안단다. 정당하든, 그렇지 않든, 더럽혀진 명성과 장애물, 주변 상황, 불운, 이 모두가 사람들을 죄수로 만들지. 무엇이 우리를 유폐하고 산 채로 매장하는지 늘 이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창살이나, 새장 벽의 존재를 느낄 수는 있단다.’[1800년대 어느 날,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너도 알다시피 난 지금 일에 몰두하고 있지만, 지금으로선 어떤 만족할 만한 결과도 얻어내지 못하고 있어. 이 가시나무들도 때가 되면 흰 꽃을 피우리라 기대하면서 무익해 보이는 이 싸움도 무언가를 탄생시키기 위한 노력이기를 바란단다. 애초의 고통이 나중에 기쁨으로 변하듯이.’[1800년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친애하는 막스, 사실은 이걸 항상 의아해했네. 자네가 나와 또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불행 가운데 행복하다”라는 표현을 쓰는 데 대해서. 그것도 극심한 경우에 대한 단순한 진술이나, 유감이나, 또는 경고로서가 아니라 비난의 뜻으로서 말이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네는 알지 못한단 말인가? 물론 “불행 가운데 행복하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그가 세상과의 공동보조를 잃었다는 뜻이지. 그리고 나아가서 매사가 그에게서 떨어져 나가 버렸거나 떨어져 나가는 중이며, 어떠한 소명도 온전한 채로 그에게 더는 도달할 수 없으며, 그래서 그는 어떠한 소명도 솔직하게 따를 수 없다는 것이지.’[1900년대 어느 날, 카프카가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유형! 요즘 스피드와 빈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어요. 스피드=욕망=양(量)의 존중=출판사의 요구=낙오하지 않기 위한 현대 수신(修身)의 제1과=빈곤을 초래하는 특효약=유정 씨가 일찍이 터득하고 계신 현대문명의 진단서….’[어느 날, 시인 김수영이 유정에게]


그러다 편지 같은 법정 스님의 일기를 다시 읽어본다.

‘어제 순천에 나가는 길에 급결 방수액과 흙손을 사와, 오늘 일꾼 두 사람과 다시 샘물을 퍼내고 바닥 틈을 시멘트로 막아놓았다. 이제는 물이 철철 흘러넘친다. 신통해서 몇 차례나 샘가에 가서 맑은 물이 넘치는 것을 들여다보았다. 이 뿌듯한 기쁨! …물 흐르는 수구(水口) 통대를 잘라 끼워 놓으니 아주 운치가 있다. 그리고 샘틀의 네 기둥은 목수 노 씨의 솜씨로 연꽃을 새겨놓으니 볼 때마다 미소를 머금게 된다.


원컨대, 이 샘물을 떠 마시는 사람마다 갈증을 면하고 넘치는 기운을 얻어지이다. 이번 샘을 고치는 일에 애써준 이웃들도 이 인연으로 항상 맑고 시원한 삶을 얻어지이다.’

그렇다. 인생이 모랫길이라 할지라도 피하지 말기를. 거기서 시원한 샘을 찾기를. 자꾸자꾸 찾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