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추스르기도 힘든데 애인까지 챙기다니 대단
일단 밖에 나가야 하는데 오늘도 침대와 한 몸..
하루의 대부분을 산송장처럼 누워 지낸다. 늦잠 자고 일어나 낮잠 자고, 낮잠 자고 일어나 늦잠 자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린다. 반복되는 늦잠과 낮잠 사이에 이렇게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데 그마저도 누워서 가능한 일이니 딱히 침대를 벗어날 이유가 없다. 먹고 싸는 일만 어떻게 좀 해결된다면 평생을 누워서 살 수도 있을 것만 같다. 한창때에 왜 그러고 사느냐 물으신다면, 모르겠다. 세상만사 모두 귀찮다. 젊은 놈이 별소리 다 한다 혀를 끌끌 차신다면,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젊은 놈도 사람이니 귀찮음을 느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담이다. 나는 사는 일이 진심으로 귀찮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그렇다.
이런 나를 삼십 년도 넘게 봐왔으면 이제 적응할 때도 됐건만, 엄마는 여전히 내가 꼴도 보기 싫은 모양이다. "남들처럼 밖에 나가서 여기저기 쑤시고 다녀야 남자를 만나든 말든 하지. 집에만 처박혀 있으면 이 세상에 너라는 애가 존재하는 걸 누가 알아줘. 뭐? 힘들어? 개똥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너 이렇게 살다가 시집 못 가고 버커리 돼서 늙어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 뭐라고? 그까짓 시집 안 가도 잘 먹고 잘 산다고? 아으, 내가 진짜지 너 때문에 속이 터져서 살 수가 없어. 도대체가 누구를 닮아서 이 모양 이 꼴이야 너느으으으으은!"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셨으니 아무래도 아빠 아니면 엄마를 닮지 않았을까? 하지만 당신들은 소싯적에 나처럼 살지 않았다고 서로들 부인하시니 나는 정말 누구를 닮아 이러는 것일까?
나에게 연애란 곧 노동이다. 공들여 씻고 화장하는 일, 어지러운 서랍 속을 뒤져 위아래 짝이 맞는 속옷을 찾아내는 일,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에 억지웃음을 지어주는 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연락하며 안부를 묻고 시시콜콜한 일상을 보고하는 일, 사소한 문제로 죽일 듯이 싸우고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하는 일, 가끔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내 생각을 애써 설명해야만 하는 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힘겹게만 느껴진다. 그리하여 나는 연애하는 모든 이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제 한 몸 추스르기에도 바쁜 세상에 애인까지 챙기며 살아가다니 그것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이 세상에 또 어디 있어? 바람피우는 사람은 진짜 손뼉 쳐줘야 해. 한 명만 만나기도 피곤해 죽겠는데 두 명을 번갈아가며 만나다니 진짜 대단하잖아!
게을러빠진 나는 오늘도 가만히 드러누워 이 글을 쓴다.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지치는데 연애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버린 내가 벌떡, 하고 일어날 수 있을 만큼 멋진 남자를 이번 생에 만날 수 있을까? 운이 좋아 그런 사람을 만난다 하더라도 내가 그 어려운 연애를 해낼 수 있을까? 아니다. 모두 때 이른 걱정이다. 엄마 말대로 여기저기 쑤시고 다녀야 남자를 만나든 말든 하지. 그래, 지금이라도 일어나 어디든 나가보자. 마음에 드는 사람이 보이면 말이라도 걸어보는 거야. 자, 일단 씻어야 하는데. 어제 씻었으니까 씻지 말까? 그래, 그러자. 이 정도면 깨끗해. 근데 오늘 추운가? 추운가 봐. 나가지 말까? 나갈까? 나가지 말까? 나갈까? 에이, 몰라. 다 귀찮아. 그냥 집에 있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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