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2.20 김정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제2바이올린 부수석)
김정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제2바이올린 부수석
읽고 쓰기는 학교에서 배우지만 말하기와 듣기는 외국어가 아니라면 따로 가르치지 않는다.
말하고 듣는 것은 그만큼 자연스럽지만 사실 잘 말하고 듣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리더십 교육을 함께 받는 오케스트라 매니저들과 저녁 먹으면서 새로 단원을 뽑는 과정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스펙이 비슷한 두 사람이 있다면 누구를 뽑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나라면 잘 '듣는' 사람을 뽑는다.
내가 다니는 오케스트라는 오디션 후에 실제로 같이 일하는 과정을 거쳐 사람을 뽑는다.
물론 연주 실력이 뛰어나야 하고, 성품이 원만하면서도 음악가로서 개성이 있고 우리가 일하는 속도에 발맞출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잘 듣느냐는 것이다. 청력이 좋다는 말이 아니다.
연주하면서 자기 소리와 남의 소리를 고루 듣고 거기에 맞춰 반응할 줄 아는 사람이냐는 거다.
같이 연주해 보면 알 수 있다.
각자 내는 소리가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잘 듣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자기가 맡은 음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귀와 마음이 활짝 열려 있어야 함께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다.
내가 하는 일은 악기를 연주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연주하는 사람도 자기가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한다는 건 결국 음악 속에 들어가서 음악을 듣는 것이기도 하다.
잘 듣는 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음악만이 아니라 여럿이 같이하는 모든 일이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니 일을 떠나서 삶 전반이 다 그렇다.
마음을 열어 주의 깊게 듣고, 들은 것을 수용해서 나 스스로 자연스럽게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오케스트라에서 배웠다.
배운 걸 연주할 때만 쓰기는 아깝다. 당장 오늘 아침부터 만나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더 귀를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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