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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1083] 나체, 옷, 종교

바람아님 2017. 3. 20. 23:16
조선일보 2017.03.20 03:07

유럽에서 무슬림 여성이 착용하는 히잡이 문제 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걸 벗으라고 요구하고, 중동 사람들은 종교의 자유와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요구라고 항의한다. 얼마 전에도 프랑스 해수욕장에서 무슬림 여성이 입는 전신 수영복인 부르키니(부르카와 비키니의 합성어)를 금지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우리는 다 벗고 있는데, 왜 너희 무슬림은 해수욕장에서조차 옷을 안 벗느냐는 것이다.


옷(복장)이 문명 충돌의 접점이 되었다. 옷의 가장 기본적인 용도는 추위와 더위를 조절하는 기능에 있다. 더위는 옷을 벗게 하지만, 역으로 입게도 한다. 더운 나라에서 물이 있으면 옷을 벗지만, 물이 없는 환경에서는 오히려 옷을 입는 것이 더위를 막는 방법이다. 햇살이 내리쬐는 열사의 사막에서는 수건이나 타올로 얼굴과 몸을 가리는 게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가리지 않고 몸을 노출하면 화상 입는다.

아랍의 무슬림이 옷을 입어 몸을 가리는 이유는 이런 기후 환경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리스에 가서 여름에 있어보니까 한낮에는 섭씨 35~37도가 나간다. 그런데 사방이 바다이다. 에게 해(海)와 이오니아 해가 국토를 감싸고 있다. 옷을 벗고 수영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다. 수도 아테네만 해도 버스 타고 잠깐 나가면 천지가 해수욕장이다. 옷을 벗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고대 희랍의 신상(神像)들이 모두 나체로 되어 있는 이유를 짐작하겠다.


고대 희랍의 조각들은 과감하게 벗었다. 나체에는 평등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너나 나나 벗으면 똑같다'는 것이다. 나체엔 거짓의 옷을 벗어버린 진실함이 들어 있고, 인간의 성욕(性慾)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다소 비약한다면 민주주의는 나체의 문화에서 발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랍은 남자들이 낙타 타고 몇 달씩 밖에 나가 장사를 해서 먹고살았던 문명이다. 집에 남겨 놓은 여자들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 아마도 남자들은 여성의 정조(貞操) 문제가 신경 쓰였을 것이다. 이슬람은 주색(酒色) 문화에 지금도 저항한다. 현재 유럽은 사막의 기후 조건이 아니고, 몇 달씩 집을 비워야 했던 대상(隊商)의 환경이 아니다. 로마법에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