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삶과 믿음] 좋은 친구

바람아님 2017. 4. 9. 23:32
[중앙선데이] 입력 2017.04.09 01:18

얼마 전 한 빌딩 입구에서 추억의 한국 영화 포스터를 전시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주인공 4명이 교복을 입고 삐딱하게 서서 세상을 향해 강렬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영화 ‘친구’의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이 영화는 2001년 제작되어 큰 히트를 쳤다.
 
영화 속 아이들은 학교에서 좀 논다(?) 하여 머리를 기른 채 책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운동화는 꼭 꺾어 신었다. 그리고 껌을 씹고 침을 옆으로 뱉어댔다. 우리 나이 또래가 학교에 다닐 때 쉽게 보던 군상들이었다. 그래서 친구란 영화가 관객 각자의 추억을 불러일으켜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던 것 같다.
 
포스터 전면에 있는 문구도 미소를 짓게 한다.“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친구(親舊)’란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이란 뜻이다. 살면서 더욱 느끼는 것이 친구의 중요성이다. 좋은 친구를 갖는 것처럼 큰 행운은 없을 것이다.
 
예전 한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읽었던 이야기이다. 한 청년이 사형을 당하게 됐다. 그 청년은 마지막 소원으로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뵙고자 했다. 그래서 청년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부탁한다. 어머니께 가 있는 동안 대신해서 옥에 갇혀 있을 것을 제안한 것이다. 친구는 흔쾌히 승낙한다.  
 
그런데 약속한 날짜가 지나자 간수는 약속대로 남은 친구를 처형하려 했다. 억울한 죽음을 앞둔 친구는 사형수인 자신의 친구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슨 피치 못할 일이 생겼을 것이라 확신하고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을 죽음으로 지키려 했다.  
 
그때, 청년이 극적으로 도착했고, 간수도 두 사람의 우정에 감탄하여 사형을 면하게 해주었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신의 있는 친구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성경에서는 ‘성실한 친구는 안전한 피난처요, 그런 친구를 가진 것은 보화를 지닌 것과 같다’고 할 정도다(집회 6,14). 좋은 친구, 성실한 친구를 갖는 것은 이처럼 인생의 큰 의지와 힘이 된다.  
 
친구는 행복할 때가 아니라 불행할 때 알아보기 쉽다고 하는 말은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 말일 것이다. 성경에서도 내가 살겠다고 친구에 대해 모욕이나 멸시를 하고, 비밀 폭로와 배신행위를 서슴지 않는 행위는 결국 우정을 영영 파괴시킨다고 말한다.
 
요즘 세태를 보면 정말 신의 있고 좋은 친구를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한다. 누구나 좋은 친구를 갖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먼저다. 그러므로 좋은 친구를 얻고자 하면 내 자신이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허영엽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장